인천의 한 초등학생이 유괴된 지 나흘 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유괴범은 빚에 쪼들리던 20대 가장이었다. 유괴범은 수사본부 반경 500m 안에서 협박 전화를 걸고도 수사망을 피해가 경찰의 대처가 초동단계부터 미흡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숨진 뒤에도 협박전화=인천 연수경찰서는 연수구 송도동 M초교 2학년 박모(8) 군을 유괴한 뒤 살해한 혐의로 견인차 운전기사 이모(28) 씨를 붙잡아 범행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15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11일 오후 1시 반경 송도동 K아파트 상가 앞에서 장난감을 사러가던 박 군에게 S고교 가는 길을 잘 모르니 알려 달라며 견인차에 태워 유괴했다.
이 씨는 박 군에게 부모의 직업과 집 전화번호를 알아낸 뒤 오후 2시 반경 포장용 테이프로 입을 막고 손, 발을 묶은 뒤 차량 뒷좌석에 태워 인근 남동구 남동공단 일대 등을 돌아다녔다.
이어 오후 2시 45분경 남동공단의 공중전화로 박 군의 집에 전화를 걸어 현금 1억3000만 원을 준비하라고 협박한 것을 시작으로 13일 낮 12시까지 모두 16차례에 걸쳐 협박전화를 걸었다.
이 씨는 이날 오후 11시 30분경 경기 부천시에서 인천으로 이동하던 중 박 군이 숨진 것을 발견하고, 12일 0시 10분경 남동구 고잔동 한 유수지에 박 군의 시신을 버렸다.
이 씨는 박 군이 숨진 이튿날에도 박 군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 보고 싶어요. 아빠, 나 집에 데려다 준대라고 말한 박 군의 목소리를 들려줬으나 이는 숨지기 전 녹음한 것으로 드러났다.
빚 때문에=전과 3범인 이 씨는 차량 견인사업에 실패하고, 사채를 빌려 유흥비로 사용하며 모두 1억3000만 원의 빚을 졌다. 9일 부인(31)과 돈 문제로 심하게 다툰 이 씨는 빚을 한 번에 갚기 위해 이때부터 유괴를 계획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 씨는 아파트 값이 치솟은 송도동에 부자가 많을 것 같아 이 일대를 돌아다니며 초등학생 4, 5명에게 길을 물었으나 박 군만 순순히 견인차에 타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박 군은 고등학교 교사인 아버지(45)와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43) 사이의 외아들로 누나(12)가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생후 11개월 된 딸을 둔 유괴범 이 씨는 연수구 연수동에 24평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으나 집을 담보로 1억 원을 대출받아 사용한 뒤 생활고에 시달려왔다.
경찰은 협박 전화 발신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연수구 청학동의 한 공중전화 앞 상가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화면에 이 씨의 견인차량이 찍힌 것을 발견하고, 차량 소유주를 추적한 결과 14일 낮 12시경 이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 2시 반경 자신의 집 주변 도로에 견인차를 세워 놓고 잠을 자던 이 씨를 붙잡았다.
경찰의 늑장 대응, 부실한 수사=이 씨가 박 군 집에 처음 전화를 걸어 유괴사실을 알린 것은 11일 오후 2시 45분 경. 하지만 경찰은 사건 발생 후 인천시내 7개 경찰서의 형사 인력만 투입해 수사에 나섰다. 박 군 부모에게 걸려오는 전화의 감청과 위치추적에 나선 것은 첫 협박전화가 걸려온 지 6시간쯤 지난 8시 29분경 걸려 온 5번째 전화부터였다.
특히 13일에는 수사본부가 차려진 연수경찰서에서 500m 떨어진 장소 등에서 협박전화를 걸었지만 경찰은 검거에 실패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이 일요일에 발생해 초동단계에서 대규모로 경찰력을 동원해 일제검문검색 등을 하지 못했다며 감청영장을 발부받고도 통신회사의 협조를 얻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이 씨가 통화를 짧게 한 뒤 끊어 위치추적이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한편 빈소가 차려진 인천적십자병원 영안실에서 박 군 어머니는 아들의 영정을 차마 볼 수 없으니 치우라며 오열하다 끝내 실신했다.
황금천 차준호 kchwang@donga.com run-juno@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