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말에 개헌 카드를 들고 나왔다. 어제 갑작스러운 대()국민 특별담화를 통해 5년 단임제인 대통령 임기를 4년으로 단축하되 1회에 한해 연임이 가능하도록 하는 4년 연임제() 개헌을 제안한 것이다. 권력구조만 바꾸는 이른바 원 포인트 개헌이다.
노 대통령은 개헌이 2002년 대선 당시의 공약임을 상기시키며 개헌 발의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은 4, 5월 이전에 끝나면 (대선 일정에) 부담이 없다며 이른 시일에 발의할 것임을 시사했다. 마침내 노 대통령이 개헌 정국()의 막을 연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왜, 지금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노 대통령은 담화에서 4년 연임제 개헌에 대해 국민적 합의수준이 대단히 높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연임제를 포함한 중임제 개헌 찬성비율은 3540% 정도다. 그나마도 다음 대통령 임기 중에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현 대통령 임기 말 개헌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1987년 장기집권 방지를 주목적으로 만들어진 현행 헌법에 대한 개정 논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졸속 개헌이나 정략적 카드로 이용될 가능성에 대한 경계심 때문이다.
더구나 학계와 정치권에서는 지난해 초부터 개헌 논의를 하려면 지금부터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노 대통령이 개헌을 자신 임기 중의 과제로 생각했다면 그 때부터라도 여야와 학계 등이 참여하는 개헌추진기구의 구성을 서둘렀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 노 대통령은 제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헌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문화다며 적극적으로 개헌을 주도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정치권을 4개월 이상 뒤흔든 대연정()을 제안했던 것이다.
노 대통령은 단임제가 책임정치를 훼손한다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국민을 오도()할 소지가 크다. 대연정 제안 때 원활한 국정수행을 할 수 없는 이유로 여소야대() 구도를 든 것과 닮은 논리다. 대통령제의 본산인 미국에서는 현행 4년 중임제가 다음 선거 준비 때문에 소신 있는 국정운영을 어렵게 한다는 이유로 6년 단임제로의 개정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과 국회를 서로 다른 당이 맡을 때 국정운영의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갑자기 국정실패의 책임을 제도 탓으로 돌리고 있다.
노 대통령은 정략적 의도가 없으며 어느 정치세력에도 유리하거나 불리한 카드가 아니다고 했지만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개헌논의가 갖는 폭발성에 비추어 다른 정치적 정책적 의제는 짧아도 34개월 뒤로 밀릴 우려가 크다. 대통령의 실정() 책임이나 여권의 지리멸렬함은 덮어지고 야당의 유력 대선주자들의 행보도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다. 여권에는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야당에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책임 있게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이 개헌을 지지하는 것이 사리에 맞다고 말해 차기 정권에서의 개헌 지지파까지 사리에 어긋나는 세력으로 몰아가고 있다. 원 포인트 개헌을 한다지만 막상 논의가 본격화되면 영토조항 등 민감한 사안을 둘러싼 논란도 확산돼 법적 일정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이러니 정치권 안팎에서 개헌 제안에 대해 정권 재창출을 위해 대선 판 흔들기의 첫 카드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지금 다수 국민이 노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마지막 13개월 만이라도 정치게임에서 손을 떼고 민생 챙기기와 한미동맹 복원 및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같은 국가적 과제에 몰두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올해 국정운영 계획을 밝히는 연두회견조차 제쳐놓고 개헌이라는 정치적 정쟁적 의제부터 던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