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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지는 체니

Posted September. 12, 2006 06:56   

2004년 6월 말. 딕 체니 부통령은 일과를 마치고 휴식 중이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불쑥 찾아갔다. 체니 부통령은 당시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던 제3차 6자회담(6월 2326일)의 미국 대표단이 서명하려는 합의문에 문제가 있으므로 이를 번복하는 긴급 훈령을 내려야 한다고 요청했다.

당시 미국 대표단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경제 지원과 안전보장을 약속해 줄 수 있다는 방침이었으나 체니 부통령은 북한이 먼저 핵을 완전히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 시간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연회에 참석 중이어서 연락이 닿지 않자 체니 부통령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를 통해 직접 협상단에 지침을 내려보내도록 했다.

체니 부통령이 얼마나 막강하고 구체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다. 그러나 요즘 미국 역사상 최고 실세 부통령으로 불리던 그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조짐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지난주 부시 대통령이 중앙정보국(CIA) 비밀 감옥의 존재를 시인하면서 이곳에 있던 14명의 수감자를 국방부로 이감하자 미국 주요 언론은 일제히 2년을 끌어온 백악관 내 체니 VS 라이스(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노선 논쟁에서 라이스 노선이 승리를 거둔 것이라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체니 부통령의 옹호자들조차도 그의 영향력이 20032004년 절정기를 고비로 조금씩 쇠락하고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라크전쟁의 난맥상, 아부그라이브 수용소 인권 실태 폭로, 리크게이트에 따른 루이스 리비 부통령비서실장의 사퇴, 포로 인권 관련 법안을 둘러싼 공화당 지도부와의 관계 악화, 테러 용의자들의 법적 권리를 옹호한 대법원 판결 등이 체니 부통령의 영향력을 감소시킨 원인으로 꼽힌다.

게다가 막강하게 포진했던 네오콘(신보수주의자) 그룹의 핵심이 대부분 비핵심 라인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대북 정책에선 체니 부통령의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관측이 많다. 특히 대북 금융제재의 성과가 체니 부통령이 한반도 문제에 여전히 힘을 갖는 언덕이 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고위 관리들까지 대북 선제공격론을 들고 나왔지만 체니 부통령이 이를 일축한 것도 금융제재를 통해 북한 목죄기가 성공하고 있으므로 굳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은 군사적 선택을 운운할 필요가 없다는 자신감의 결과라는 해석이다.



이기홍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