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아시아인이 우승한 것은 딱 두 번.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손기정 선생과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황영조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56년 세월의 강이 있지만 두 대회는 여러 인과관계로 얽혀 있다. 우승자가 둘 다 한국인이고 대회 날짜도 같은 8월 9일. 손 선생이 시상대에서 월계관을 쓸 무렵인(출발 시간은 오후 3시 2분) 오후 6시에 배턴터치하듯 황영조가 바르셀로나 경기장을 출발했다. 참가 선수는 베를린이 56명(27개국)이고 바르셀로나는 꼭 2배인 112명(73개국). 한국 선수 2명과 외국 선수 1명이 후반 레이스를 펼친 것도 비슷하다. 바르셀로나에선 29km 지점부터 황영조 김완기와 모리시타(일본)가 각축을 벌였다. 베를린에선 35km 지점부터 손기정 남승룡과 하퍼(영국)가 3파전을 벌였다.
시상식 장면도 상징적이다. 베를린에선 태극기 대신 일장기가 두 번(1, 3위)이나 올라갔지만 바르셀로나에선 태극기 밑에 일장기(2위)와 독일 국기(3위)가 올라갔다. 1936년 우리 민족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했던 일제와 히틀러의 독일이 56년 만에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셈. 하지만 잘못 알려지거나 부풀려진 사실도 있다.
1 손 선생은 폭염 속에서 달리지 않았다
1936년 8월 9일 오후 36시 베를린은 섭씨 2122.3도, 습도 20%의 맑고 건조한 날씨였다. 마라톤 최적 기온(섭씨 10도 안팎, 습도 30%)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부에서 말하듯 30도가 넘는 찜통 더위는 아니었다. 더구나 113km와 3042.195km 구간은 10만 평의 그뤼네발트(녹색 숲이라는 뜻) 공원을 달리는 숲 속 길. 지금도 200, 300년이 넘는 아름드리나무가 빽빽해 햇볕이 잘 들지 않는다. 다만 1330km 지점의 직선 고속도로(아푸스아우토반)를 달릴 때 약간 더웠으리라 생각된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는 섭씨 28도에 습도 80%의 한증막.
2베를린 올림픽 코스는 거의 평평했다
소위 빌헬름 황제 언덕(35km 지점)이나 비스마르크 언덕(40km 지점)은 없다. 그 지점은 표고 2m 정도의 약간 오르막 부분일 뿐. 코스를 답사한 황영조(36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은 40km 지점의 페르스트라야 철교 아래 S자 오르막은 달려온 탄력으로 가볍게 올라갈 수 있는 구간이다. 더구나 당시 손 선생은 2위 하퍼를 2분 거리로 떨어뜨린 상황이어서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르셀로나에서 황영조는 표고 50m가 넘는 몬주익 언덕(40km 지점)에서 모리시타를 따돌렸다.
3손 선생의 우승 기록은 당시 세계 최고 기록이 아니다
손 선생의 우승 기록은 2시간 29분 19초. 100m를 평균 21.23초의 속도로 달린 것. 역대 올림픽 사상 최고 기록이자 2시간 30분 벽을 처음으로 깬 것. 하지만 당시 세계 최고 기록은 손 선생이 1935년 11월 일본 도쿄 메이지신궁대회에서 세운 2시간 26분 42초. 이 기록은 12년 뒤인 1947년 4월 손 선생의 제자 서윤복이 보스턴 마라톤에서 2시간 25분 39초로 우승하며 갈아 치웠다.
김화성 mars@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