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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초입 건봉사 계곡엔 1500년이 흐른다

금강산 초입 건봉사 계곡엔 1500년이 흐른다

Posted July. 21, 200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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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둘러싸인 호젓한 이 길. 건봉사에 이르러 끝이 난다. 절 앞 주차장. 차문을 여니 정신이 번쩍 든다. 또랑또랑한 계곡 물소리, 솜털 설 만큼 서늘한 기온, 숨통 트일 만큼 청징한 공기 덕분이다.

절터는 계곡물 좌우로 나뉘고 길은 계곡 왼편을 따른다. 그 길의 초입, 돌기둥 네 개로 떠받친 큰 문이 있다. 불이문(). 부처를 향한 마음이 둘일 수 없다는 단호한 주문이다.

자박자박 계곡 물소리에 장단 맞춰 오르는 산길. 계곡 위로 무지개가 섰다. 일곱 빛깔 무지개가 아니다.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 능파()교다. 다리는 계곡 왼편(남쪽)의 극락전, 팔상전(625전쟁 때 소실)터와 오른편(북쪽)의 대웅전, 염불전을 잇는다. 능파란 사바세계의 고통을 불법(부처님 말씀)으로 헤침을 이른다.

그 다리 건너 만나는 돌기둥 두 개. 표면에 다섯 개씩 상징이 새겨져 있다. 십바라밀이다. 이승의 번뇌에서 해탈,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열 가지 수행법이다. 대웅전은 그 석주 앞 누대(봉서루)의 통로를 지나 닿는 절 마당의 정면(북쪽)에 있다.

건봉사는 대찰이었다. 1930년대만 해도 국내 4대 사찰에 들었을 정도. 지금은 설악산 신흥사의 말사지만 당시는 거꾸로 신흥사와 낙산사를 거느린 본사였다. 그 건봉사를 규모로만 말해서는 안 된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의병을 일으킨 호국불교의 터전, 이 세상 단 두 곳(스리랑카, 한국)에만 봉안된 부처님 진신치아 사리를 모신 사찰, 28년간 쉬지 않는 염불수행 만일염불의 도량으로 더더욱 이름났기 때문이다.

경내에 치아사리가 봉안된 곳은 두 곳. 대웅전 옆 만일염불원과 계곡 건너 적멸보궁이다. 염불원에서는 투명한 석가세존 치아사리함(5과)을 통해 친견한다. 적멸보궁에서는 사리탑에 봉안(3과)됐다. 치아사리는 사연도 많다. 임란 때는 왜군에게 침탈당해 사명대사가 되찾아 왔다. 1986년에는 도둑을 맞아 총 12과 가운데 4과를 잃었다.

당시 도난당한 치아사리를 되찾은 경위도 귀를 솔깃하게 한다. 범인이 자발적으로 되돌려 주었는데 이유는 꿈. 웬 할아버지가 현몽해 돌려주지 않으면 후손에게 화가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단다.

건봉사 계곡은 금강산 길목이다. 민통선이 절 뒤로 물러선 1989년까지 35년간은 불자의 범접조차 어려웠다. 그 민통선이 절 뒤로 지날 만큼 비무장지대에 가깝다. 남방한계선 철책도 예서 4km 북쪽이다. 산양의 서식지인 고진동 계곡(비무장지대)도 멀지 않다.

이런 건봉사의 모습을 확연히 볼 수 있는 길이 있다. 1km 거리의 등공대를 다녀오는 것. 이 전망 좋은 봉우리는 만일염불의 효시인 발징 스님의 다비식(758년)을 올린 곳. 민통선 철책 문을 통과한 뒤 최전방부대 보급로를 가로질러 지뢰 경고판이 설치된 철조망 친 오솔길로 간다. 숲길에는 들꽃과 산딸기도 많다.

건봉사의 멋스러움은 스러진 절터에 있다. 낙서암이 있던 터. 무너진 돌기둥을 들꽃이 덮고 있다.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오솔길. 연꽃 피는 두개의 연못 사이를 지나 팔상전 옛터를 밟는다. 1500년 역사를 간직한 고찰의 옛터는 수채화처럼 수더분하고 고즈넉하다.



조성하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