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신경장애자, 그들만의 기적같은 삶

Posted October. 15, 2005 07:52   

中文

'화성의 인류학자'

어느 날 교통사고로 완전한 색맹이 된 화가 조너선 I.

그는 식탁에 앉는 순간 욕지기를 느꼈다. 그것은 마치 시멘트를 부어 놓은 것 같았다. 음식은 온통 회색이었고 겨자와 마요네즈, 케첩과 잼을 구분할 수 없었다. 부부관계도 가질 수 없었다. 아내의 몸은 소름끼치는 회색이었다.

주위만 온통 흑백TV 화면처럼 변한 게 아니었다. 꿈속에서도 납으로 빚은 세상을 만났다. 상상과 기억마저도 무채색으로 덧칠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조금씩 마음의 평화를 찾기 시작했다. 색맹의 현실을 받아들였다.

I는 사고를 당한 지 5주가 지났을 때 일출을 보았다. 작열하는 붉은색이 모두 검게 변해 마치 엄청난 핵폭발처럼 느껴졌다. 일출을 이런 식으로 감상한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그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점점 묘한 매력과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는 생리적, 정신적, 미학적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선천성 시각장애인을 닮아 갔다.

2년쯤 지나자 눈부신 한낮보다 흐린 날이나 어스름 무렵에 주변이 더욱 뚜렷이 보였다. 그는 색으로 얼룩지지 않은 순수한 세상을 정제된 시각으로 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색에 가려져 일반인이 느낄 수 없는 미묘한 질감과 무늬가 아주 뚜렷이 부각되었다.

I는 보는 그대로를 화폭에 옮겼고, 사람들은 그의 그림이 아주 독창적이며 놀라운 흑백의 시기로 접어들었다고 감탄했다.

인지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저자는 대뇌의 어떤 작용을 거쳐 이처럼 고차원적인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추적한다. 신경이나 감각이 파손된 환자들이 아주 절망적인 상황에서 뜻밖의 발전과 진화를 이루어 나가는 그 질병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질병과 결함, 장애는 역설적이다. 변화된 상황에 따라 새로운 조직과 질서를 탄생시키며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상쇄한다.

이 책에는 신경병의 습격을 받고 장애를 살아가는 7명의 환자가 등장한다. 뇌종양으로 기억을 잃은 사람도 있고, 병원 복도를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투레트증후군의 의사도 있다. 자신이 인간이라는 외계인과 살아가는 화성의 인류학자로 느끼는 자폐증 동물학자도 있다.

수술을 받고 40년 만에 시력을 되찾게 된 버질은 아주 희귀한 사례다.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난 사람이 성경의 표현 그대로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고 앞을 보게 된다면 그 기분은 어떨까?

붕대를 풀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나를 맞이한 것은 안개였다. 방금 전에 그곳에서 목소리가 들렸으니 그것은 분명 사람의 얼굴일 터인데, 나는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수술을 받고 나서 이전보다 더 장애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망막과 시신경에서 자극을 보내도 뇌에서 해석이 되질 않았다. 빛은 처음 대하는 외국어였다.

공간과 거리 판단이 되지 않아 지팡이 없이 걷는 게 헷갈렸고 자기 그림자에 놀라 비틀거리기 일쑤였다. 병원 복도는 시커먼 구멍으로 비쳤다. 개와 고양이도 구분할 수 없었다.

버질은 마치 촉각의 세계에서 시각의 세계로 쫓겨난 망명객과 같았다. 실명()의 세계에서 살아온 그에게 비()실명은 견디기 어려운 장애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버질의 시력이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순식간에 다시 시각장애인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2차 실명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광명과도 같은 실명이었다.

나는 이제 빛으로 이루어진 눈부시고 어리둥절한 세계를 떠나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본래 자리로 돌아갔다. 50년 동안 집과 같았던 정든 그곳으로, 기꺼이.

질병과 장애, 이 난해하고 역설적인 선물! 자연의 상상력은 인간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신기한 것이다.

원제 AN ANTHROPOLOGIST ON MARS(2005년).



이기우 key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