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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양형기준법, 사법부 주도로 제정해야

[사설] 양형기준법, 사법부 주도로 제정해야

Posted September. 14, 2005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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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판결에서 유전무죄()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뇌물 범죄나 경제사범, 불법 정치자금 수수 정치인이나 선거사범이 재판부와 연()이 닿는 전관() 변호사를 선임해 가벼운 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2003년 대법원이 뇌물죄에 대한 엄격한 양형()기준을 만들고 전국 법원에 부패범죄 전담재판부를 설치한 이후 1심에서는 추상() 같은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2심 재판에서는 춘풍()이 불어 슬금슬금 풀려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장관급 회의에서 피고인의 범죄 내용에 따라 형량을 정한 양형기준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법관별로 들쭉날쭉한 형량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점은 우리도 공감한다. 그러나 법과 양심에 따른 판사의 양형을 지나치게 제약하는 법률을 만들다 보면 사법권 침해 논란을 부를 수 있다.

양형기준법을 두더라도 지금까지 사개추위에서 논의된 대로 권고 형식의 양형 기준을 제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적절하다. 법관이 권고된 기준을 벗어나 양형을 하려면 판결문에 그 이유를 소상히 밝혀야 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재량권()의 남용을 억제할 수 있다.

양형기준법안을 만드는 일도 그동안 재판 경험과 양형 연구 실적이 축적된 사법부가 더 잘할 수 있다. 형사재판의 한쪽 당사자에 불과한 법무부나 검찰이 양형기준법 제정을 주도하는 것은 우선 삼권분립 정신에 맞지 않고 법관들의 반발을 사기도 쉽다. 사법부가 법관들의 의견을 수렴해 스스로 안을 만들고 법조계가 참여해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피고인의 범행 동기, 반성의 정도, 건강 상태, 피고인이 구속됐을 때 고려해야 할 주위 환경 등의 정상()은 구체적인 재판을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다. 범죄 관련 데이터를 컴퓨터에 입력하면 형량이 계산돼 나오는 식의 기계적 양형은 개인차()를 무시하기 때문에 오히려 정의와 형평에 어긋날 수 있다. 경직된 양형기준법을 만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