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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통령 과거로 가도, 국민은 미래로 가자

[사설] 대통령 과거로 가도, 국민은 미래로 가자

Posted August. 17, 2005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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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과거사는 오늘도 미래에도 살아있으며, 앞으로의 규범은 과거의 평가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국가권력 남용 범죄에 대한 시효()배제 입법을 주문하며 역사의 과오() 정리를 국가어젠다(의제)로 못질한 명분을 거듭 밝힌 것이다. 과거 청산에 대한 노 대통령의 집념은, 그 의도를 둘러싼 적잖은 의문에도 불구하고, 타협 불가능한 단계에 이른 느낌이다.

대부분의 역대 정권이 앞 정권과의 차별성을 보이기 위해 과거사 청산 작업을 벌였지만 노 대통령처럼 집권 2년 반 동안 시종 과거에 매달린 전례는 없다. 1980년 신()군부도 일제와 유신잔재 청산을 구호로 내걸었고, 노태우 정권은 5공 청산을, 김영삼 정권은 역사 바로 세우기를, 김대중 정권은 과거와의 화해를 내세웠다. 그러나 이들 정권은 곧바로 먹고 사는 일로 관심을 돌렸다. 정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결국 민생()향상과 국력신장에 기여한 결과에 달렸다는 역사의 평범한 교훈에 따랐기 때문이다.

역사만 먹고는 살 수 없다

과거는 청산하고 파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 건설에 기여할 때 의미를 갖는다. 그런 점에서 광복 60년을 맞은 대한민국이 미래 청사진은 간 데 없고 온통 과거사 어젠다에 매몰돼 있는 것은 지극히 퇴행적()인 현상이다. 이미 김대중 정부 아래서 만들어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법이 살아 있고, 현 정권 주도 아래 일제 강점하 반민족 행위 진상 특별법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 만들어져 국가정보원 경찰 국방부 등이 자체적인 과거사규명위를 가동 중이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이 위헌 시비까지 자초하며 과거 청산을 위한 소급()입법까지 언급한 것을 순수하게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노 대통령의 시도를 정권적 정파적 이익을 위한 정치행위로 보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노 대통령 말대로 하자면 현 정권 2년 반이야말로 살아있는 과거다. 그 국정() 성적은 20%대로 떨어진 대통령 지지율과 10%대를 헤매는 여당 지지율이 말해주듯 참담하기 짝이 없다. 정권이 경제와 민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가장 중요한 잣대다. 그나마 경제가 무너지지 않은 것은 노 대통령이 줄기차게 매도하는 산업화 세력이 쌓아올린 축적 때문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노 대통령은 또 끊임없이 법() 위의 정치를 펼치고 있다. 재작년말의 재신임카드와 지난해 탄핵심판을 불러온 선거법 위반 발언, 그리고 국가정보원 도청테이프 공개 찬성 발언에서 이번 과거사 소급입법 발언에 이르기까지 결코 헌법의 수호자라고 믿기 어려운 언동을 계속해왔다.

국민 각계가 국가의 대안 말할 때다

문제는 대통령과 여권의 잘못된 국가 어젠다 설정을 대신해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할 집단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정운영의 축()을 이루는 여당은 지난해 국가보안법 개폐논란 때부터 최근 연정론() 파동과 과거사 정국에서 청와대가 외치면 따라가는 청창당수()의 모습만 보일 뿐이다. 그나마 개혁 대 실용의 논란마저 사라졌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시절 대통령의 한마디에 우르르 몰려가는 여당의 모습과 판박이다.

그러나 희망적 미래 청사진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책임은 야당에 더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한나라당은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제대로 된 공론()을 제기하지 못한 채 대통령과 여당이 꺼낸 어젠다 틀 안에서 우왕좌왕 해왔다. 이번 노 대통령의 과거사 문제 제기를 놓고도 무슨 속셈이 있을까를 분석하는 데 골몰할 뿐이다. 국정원 테이프 공개논란 때도 여당의 특별법과 똑같이 위헌요소가 있는 특검법을 내놓고 정쟁()에 매몰됐었다.

대한민국의 앞길에는 선진국 진입과 미완()의 광복을 완성할 민족통일의 기반조성 등 미래의 과제가 산적해 있다. 21세기의 동북아 정세의 격랑 속에서 어떻게 주변 강국들과의 관계를 설정해 민족 장래를 담보할 것인지도 끝없이 궁구()해야할 과제다.

과거사에 매몰된 대통령과 여당의 국정 어젠다 설정에 더 이상 끌려 다니고 매몰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제 정치권과 시민사회 등 국가사회 구성원 모두가 미래의 비전에 대한 담론()에 나서 논의를 활성화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