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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권리 위해 블법은 눈감아도 되나

Posted July. 25, 200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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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든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나그네가 그 나무를 발견했다. 나무에는 탐스럽고 아름다운 열매가 매달려 있다. 허기진 나그네는 고민한다. 따 먹을까 말까.

국가안전기획부의 1997년 대선 당시 불법 도청 내용 보도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다.

내용(열매)은 충격적이다. 정치권력과 재벌, 언론권력, 그리고 검찰권력의 추악한 음모와 거래를 자백하는 내용이다.

여론(허기진 나그네)이 들끓는다.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친다.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 주장도 거세다.

문제는 그 열매가 국가기관의 불법 도청(독 나무)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열매를 먹어서 배를 채워야(진상규명과 처벌) 할까?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서로 충돌하는 가치 가운데 어떤 가치가 더 중요한지 따져 보아야 한다.

통신비밀보호법의 규정=통비법은 불법 감청(도청)을 금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물의 공개나 사용도 금지하고 있다. 특히 통비법 제4조와 제14조는 불법 감청에 의해 얻어진 대화 내용은 재판 또는 징계절차에서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예컨대 대화 내용 가운데 일부를 인용하면서 당신 에게 뇌물 줬잖아라고 추궁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재판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의미는 수사에 사용할 수 없다는 뜻도 포함한다는 것이다.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헌법 제21조는 언론출판의 자유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1995년 결정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 알 권리는 언론출판의 자유 중 한 내용으로 마땅히 보장되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일부 언론단체와 학자들은 국민의 알 권리는 헌법상 권리이기 때문에 헌법의 하위법인 통비법에 의한 제한이나 처벌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통비법 규정과 상관없이 헌법상의 알 권리 보장에 의해 보도는 물론 진상규명까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헌법상의 더 중요한 상위 가치=그러나 헌법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제17조)와 통신의 자유(제18조)도 보장하고 있다.

국가기관에 의한 불법 도청이 이 같은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은 물론이다. 1960년 독일 연방대법원은 유명한 녹음테이프 판결에서 대화를 비밀리에 녹음하거나 그 내용을 전파하는 것은 인격 영역과 언어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문제는 이들 기본권 중에서 어느 것이 우선하느냐는 것이다.

대부분의 헌법학자들은 사생활 및 통신의 자유가 더 상위의 기본권이라고 본다. 이들 기본권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관계된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 제10조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절대적 기본권이다.

반면 언론출판의 자유는 제한이 가능한 상대적 기본권이다. 허영(헌법학) 명지대 석좌교수는 저서 한국헌법학(2005년판)에서 언론출판의 자유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사생활의 보호 등에 의해 제한받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정당한 방법에 의해 얻은 알 권리는 당연히 중시돼야 하지만 이번의 경우처럼 불법에 의한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서울대 법대 정종섭() 교수는 사생활의 비밀과 통신의 자유는 알 권리보다 우선한다며 불법 도청된 대화 내용에 현혹돼 더 큰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1961년 연방대법원의 맵(Mapp) 사건 판결 이후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는 배제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이른바 독수()의 독과() 이론이다.



이수형 so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