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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산업 길 튼 벤처신화 1호

Posted May. 20, 2005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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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1월 서울 청계천의 한 사무실. 철판을 구부려 만든 네모난 상자 주위에 사람들이 모였다. 상자 위에는 모니터 대신 TV가 올려져 있었다.

삼보컴퓨터의 SE8001. 국내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PC)였다.

이 제품을 만든 사람은 이용태(사진) 삼보컴퓨터 명예회장. 그는 정보화 전도사이자 한국 최초의 벤처기업가로 꼽힌다.

경영난 끝에 18일 삼보컴퓨터가 법정관리를 신청하자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많다. 삼보컴퓨터의 25년은 한국 벤처기업의 역사이자 한국 PC 산업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삼보컴퓨터 25년

이 명예회장이 삼보컴퓨터를 설립한 것은 1980년 7월이었다. 사업자금은 단돈 1000만 원. PC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그가 만든 두 번째 PC는 디자인에 신경을 썼고 애플용 소프트웨어를 쓸 수 있게 했다. 이 제품은 1981년 11월 캐나다에 수출됐다. 국산 컴퓨터로는 첫 수출이었다.

삼보컴퓨터는 1980년대 삼성 금성(현 LG) 대우 현대 등 막강한 대기업에 맞서 PC시장 점유율 1위를 지켰다. 기술력이 무기였다.

1990년대 들어서자 그룹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사세가 커졌다. 나래이동통신과 두루넷 등 30여 개 계열사를 거느렸다.

그러나 이내 위기가 찾아왔다.

PC에 이어 야심 차게 밀어붙였던 삐삐(무선호출기)와 시티폰 사업이 휴대전화의 등장으로 몰락했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1998년에는 부도 직전까지 몰렸다.

이 명예회장은 이 위기에서 경영자적인 수완을 발휘했다.

1998년 11월 삼보컴퓨터는 미국에서 초저가 컴퓨터 이머신즈를 선보였다. 판매가격은 499달러. 당시 일반 제품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이머신즈는 돌풍을 일으켰다. IBM 에이서 애플 게이트웨이 같은 쟁쟁한 기업을 차례로 제치고 미국시장 점유율 3위까지 올랐다.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1999년 두루넷, 2000년 이머신즈가 미국 나스닥에 상장됐다.

그러나 2000년이 정점이었다.

초저가 PC의 신화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PC 산업이 단순조립 산업으로 전락하면서 대만과 중국 업계의 저가 공세를 당할 수 없었다.

2000년 4조 원에 이르던 삼보컴퓨터의 매출은 지난해 2조1812억 원으로 줄었다. 영업 손실도 234억 원이었다.

정보화 전도사

이 명예회장은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타대에서 통계물리학을 연구한 이공계 출신 경영자다. 1970년대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전자계산기운영실장을 하며 정보화에 눈을 떴다.

그는 나는 정보화를 위한 전도사 노릇을 해왔다. 전도사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믿는 걸 권하는 게 임무라고 말하곤 했다.

삼보컴퓨터를 세운 기업인이지만 데이콤 초대 사장, 한국전자거래진흥원 이사장, 한국정보문화센터 이사장, 기업정보화지원센터 이사장 등 국내 정보통신계의 중요한 자리를 두루 거쳤다.

정보통신부 장관 물망에 오른 것도 여러 번이고 정책 수립에도 중요한 목소리를 내왔다. 소프트웨어 인력 200만 명 양성론은 그의 대표적 지론이다.

법정관리 신청 후 삼보컴퓨터는 재기할 수 있을까. 적어도 기술력과 유통망은 여전히 건재하다.

그러나 한국 최초의 벤처기업가는 이제 신화로 남게 됐다.



홍석민 sm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