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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의 움직이는 성

Posted December. 15, 2004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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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소녀 소피는 마녀의 저주에 걸려 하루아침에 90세 노파가 된다. 저주를 풀기 위해 꽃미남 마법사 하울이 사는 움직이는 성()에 들어간 소피는 음울하고 지저분한 성에 사랑과 희망을 불어넣는다. 소피는 밤이면 어디론가 사라졌다 만신창이가 돼 나타나는 하울에게 점점 마음이 끌리고, 결국 하울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63)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자연과의 공존 반전() 등 그가 그동안 보여 온 주제의식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메시지를 관객에게 던지는 방식은 다르다. 아주 직접적이다.

하울은 소피의 러브스토리를 한 축으로, 하울의 외로운 항거가 담아내는 반전 메시지를 또 다른 축으로 삼아 양쪽 끝에서 힘껏 잡아당긴다. 이 영화가 낭만적인 동시에 쓸쓸하고, 서정적인 동시에 노골적인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하울은 소피가 마녀의 저주에 빠지거나 저주에서 해방되는 순간을 호들갑스럽게 이용하려들지 않는다. 반대로, 노파가 된 소피는 나이 들어 좋은 건 놀랄 게 없다는 거구나하며 변화된 현실에서 행복과 의미를 찾는다. 저주에 순응하는 것이 저주를 푸는 것보다 더 완전한 승리임을 말하는, 깊고 아름다운 상상력이다. 불꽃 악마 캘시퍼, 천식에 시달리는 의뭉스러운 강아지 힌, 콩콩 뛰어다니는 허수아비 무대가리 등 소피의 주변 캐릭터들은 자연 속 모든 것에 영성()이 숨어 있다는 하야오 감독의 세계관과 유머 감각을 변함없이 드러낸다.

네 개의 발에 의존해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뒤뚱거리면서도 각 부위가 기적처럼 서로를 의지하며 걸어가는 고철덩어리 움직이는 성은 하야오 감독의 장인정신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 냄새나는 2D 애니메이션의 극한이다. 머리염색이 잘못 나왔다며 살 의미가 없다고 좌절하는 꽃미남 마법사 하울의 목소리 연기를 일본의 대표적 꽃미남 가수 겸 탤런트 기무라 다쿠야가 맡았다는 점도 음미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