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당들은 색깔이 있다. 한나라당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당 이념을 의미한다는 청색을 상징색으로 쓴다. 민주당은 국민의 안녕과 번영을 상징한다는 녹색과, 희망의 상징이라는 청색을 함께 당 심벌마크에 사용한다. 식품회사 로고를 연상시키는 열린우리당의 심벌은 노란색 바탕에 청색 줄이 들어가 있다. 자민련은 보수정당에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생명력의 상징이라며 녹색을 내세운다.
미국의 민주 공화 양대 정당은 한국 정당들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역사가 길다. 하지만 미국 정당은 상징색이 없다. TV 선거방송이나 신문의 선거기사 그래픽에는 공화당은 적색, 민주당은 청색으로 표시하는 경우가 많아 각 당의 상징색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뚜렷한 근거는 없다. TV 방송사나 신문 잡지에 따라서는 각 당이 우승한 지역의 색깔을 정반대로 표시한 사례도 많다. 각 당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청색과 적색이 모두 사용되고 상징색에 대한 설명도 없다.
미국 정당의 상징이라면 공화당은 코끼리, 민주당은 당나귀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설()이 있지만 1874년 토머스 내스트의 풍자만화를 기원으로 친다.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의 3선 출마 가능성을 경계하는 의미로 거대한 코끼리를 등장시켰고, 놀란 상대방을 당나귀로 그린 것이 민주당의 상징이 됐다는 얘기다. 공화당은 코끼리를 강하고 영리한 동물이라고 자랑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서투르고 멍청한 동물이라고 흉본다. 당나귀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겸손하고 친근하며 영리한 동물이라지만, 공화당은 고집불통의 어리석은 동물이라고 혹평한다.
4월 총선에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은 색깔 때문에 혼란을 겪을지도 모를 일이다. 일란성 쌍둥이 같은 두 정당의 지도부가 황색 잠바와 목도리로 색깔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당들이 상징색은 없어도 정책에 있어서만은 확실한 자기 색깔을 갖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당의 색깔은 정체성이나 본질과 무관한 상징색이 아니라 정책으로 드러나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에서 처리된 이라크 파병 동의안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에 대해 각 당은 과연 자기 색깔이 무엇이었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권 순 택 워싱턴특파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