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의 명절이자 대목인 설이 코앞에 닥쳤지만 시중의 체감경기가 여전히 바닥을 헤매고 있다. 서민들은 경기 불안감과 소비심리 위축으로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고 있고 당연히 상인들도 울상을 짓고 있다.
비닐봉지가 체감지수=시중 경기 지표의 하나인 비닐봉지의 매출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시장과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담을 때 쓰는 포장용 비닐봉지 공장을 운영하는 박상용씨(63서울 영등포구)는 11월 이후 생산량이 40%가량 줄었다. 월 5만장이던 생산량이 3만장 밖에 안 된다. 특히 재래시장이 더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는 종업원들을 아예 내보내고 가족 3명만 남아 공장을 가동중이다.
가정용 쓰레기봉투의 소비도 급격히 줄었다. 쓰레기를 줄이려는 식습관 변화도 요인이겠지만 기본적으로 소비자체가 줄어든 탓이라는 분석이다.
서울 도봉구에서 쓰레기 수거와 쓰레기봉투 도매업을 하는 B사 김모 부장(40)은 쓰레기봉투 판매량과 수거량을 보면 경기가 느껴진다. 우리끼리는 이를 쓰레기 경제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그는 2001년 겨울에는 1개 동에서 19t가량의 쓰레기가 나왔으나 작년 12월에는 15t으로 줄고, 쓰레기봉투 판매액도 월평균 4500만원에서 4100만원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예년의 경우 이맘때면 소매고객은 아니더라도 도매상들은 많이 왔죠. 예전에는 장사하느라 잠을 못 잤는데 요새는 손님이 없어 잠을 못 잡니다. 걱정돼서요.
14년째 남대문시장에서 아동복 매장을 운영하는 김혁상씨(48원아동복)의 말이다.
서울 동대문 밀리오레 3층에서 캐주얼 의류를 파는 이모씨(34)는 경기가 안 좋아도 너무 안 좋다며 이맘때면 하루 200만원 정도 나오던 매출이 올 겨울에는 80만90만원으로 줄어 이웃 상인들과 모이기만 하면 장사를 더 해야하나 걱정만 한다고 말했다.
허리띠 졸라매기=호주머니가 얇아진 직장인들이 1000원짜리 점심을 찾고 있다. 학원강사인 이모씨(29여서울 노원구 상계동)는 수입이 여의치 않아 요즘에는 1000원짜리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있다고 했다.
990원짜리 햄버거와 700원짜리 삼각김밥의 매출도 급상승하고 있다.
LG유통에 따르면 업무용 빌딩이 가장 밀집된 서울 여의도와 테헤란로의 편의점 28곳에서 지난해 12월 판매한 삼각김밥은 하루 평균 138개. 이는 전달의 123개보다 10% 이상 늘어난 것이다.
과소비의 상징이던 휴대전화 이용도 한파를 겪고 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림역 인근 휴대전화 대리점의 정정일씨(26)는 신규 고객 중 30% 정도가 기본료가 1만원 미만인 요금제를 선택한다. 적지 않은 고객들이 요금이 싼 수신전용을 선택하고 있다고 했다.
한 이동통신사에 따르면 작년 8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6500원짜리 기본요금제 가입자가 4개월 만에 68만7919명으로 전체 고객의 14.3%를 차지했다.
경기지표도 적신호=한국은행은 경기위축으로 올해 설 자금 수요는 지난해 4조2000억원보다 최대 29%가량 줄어든 3조3조5000억원에 불과할 것으로 최근 전망했다.
통계청이 이달 들어 발표한 소비자 기대지수는 94.8. 이 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낮을 경우 6개월 후 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삼성경제연구소 경제동향실 김범식(41) 수석연구원은 소비가 지나치게 줄어들 경우 실물경제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허진석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