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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법 “사법부 무력화 입법은 무효”…‘지도력 위기’ 네타냐후에 추가 악재

이 대법 “사법부 무력화 입법은 무효”…‘지도력 위기’ 네타냐후에 추가 악재

Posted January. 03, 2024 08:09   

Updated January. 03, 2024 08:09


이스라엘 대법원이 1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강경 우파 연정이 지난해 통과시킨 사법부 무력화 입법을 무효화했다. 사법부의 기능을 대폭 축소하고 행정부의 기능을 강화한 이 법안은 입법 당시부터 현직 총리 최초로 재판을 받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 본인을 구하기 위한 ‘방탄용 법안’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이에 따른 격렬한 찬반 논란으로 지난해 내내 국론 분열 또한 심각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의 전쟁으로 잠시 봉합되는 듯했던 이스라엘의 사회 갈등 또한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무효 판결 자체가 대법관 15명 중 8명 찬성, 7명 반대로 결정나면서 사법부의 분열 양상을 고스란히 노출한 탓이다. 네타냐후 총리가 속한 집권 리쿠드당 또한 판결에 불복할 의사를 비췄다. 이번 판결이 전쟁 장기화 국면, 팔레스타인 민간인 살상 등으로 이미 적지 않은 지도력 위기에 처한 네타냐후 총리에게 추가 악재가 될 가능성 또한 커지고 있다.

● 대법관 15명 중 8명 “민주 국가 훼손”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에 따르면 대법원은 이날 대법관 15인이 전원 참여한 가운데 찬성 8, 반대 7로 지난해 7월 의회가 가결한 ‘사법부에 관한 개정 기본법’을 무효로 결정했다. 대법원은 성명을 통해 “이 법이 민주주의 국가인 이스라엘의 기본 성격을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특히 행정부의 비합리적인 장관 임명을 심사하는 사법부의 권한을 없애는 부분을 문제 삼았다. 행정부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사법부의 견제 장치를 없앴을 뿐 아니라 총리가 자격없는 측근을 요직에 임명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는 이유로 오래전부터 논란이 많았다.

네타냐후 총리는 2022년 말 세 번째 집권에 성공했다. 두 번째 임기 중의 부패 혐의로 현재도 재판을 받고 있는 그가 집권 직후부터 사법부 무력화 법안을 추진하자 스스로를 구제하기 위해 삼권분립 원칙조차 깼다는 비판이 국내외에서 거셌다. 맹방인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조차 거듭 우려를 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이스라엘 곳곳에서는 대규모 반대 집회가 벌어졌지만 결국 법안은 넉 달 후 의회를 통과했다. 야권의 반발로 같은 해 9월부터 대법원이 이 법안의 적합성을 심사했고 이날 판결이 나온 것이다.

다만 이번 판결을 둘러싼 후폭풍과 여론 분열 또한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7명의 보수 성향 대법관이 무효화 결정에 반대할 정도로 사법부의 분열 또한 우려할 수준이다.

정치권에서도 찬반 양론이 엇갈렸다. 이 법안의 설계자로 알려진 야리브 레빈 법무장관은 하마스와의 전쟁이 끝나는 대로 법안을 다시 통과시키기 위한 노력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보다 더 극우 성향으로 유명한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도 또한 “반민주적인 결정”이라고 반발했다. 반면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 등 야권 지도자는 “대법원이 국민 보호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다”며 반겼다.

● 설상가상 네타냐후

이번 판결로 네타냐후 총리는 상당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하마스와의 전쟁 상황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네타냐후 정권이 하마스의 선제 공격을 사전 인지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여전한 가운데 법안 재통과를 시도하면 하마스와의 전쟁에서 핵심 역할을 맡아 온 예비군이 반(反)네타냐후 시위를 재개하거나 복무 거부를 선언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AP통신 등이 진단했다. 예비군들은 지난해 법안에 반발해 복무 거부를 선언했지만 전쟁이 발발하자 복귀한 상태다. CNN 또한 “네타냐후 총리가 논란이 되는 변화를 강행할 경우 헌정 위기가 닥쳐올 수 있다”고 평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서 향후 몇 주 안에 수천 명의 병력을 철수할 예정이라고 1일 밝혔다. 그간 계속됐던 대규모 공습과 지상군 위주의 교전 대신 저강도 작전으로 전환해 민간인 희생을 줄이라는 미국의 압박에 따른 것이라고 CNN은 분석했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