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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참깨-고추 밭에 널어놓고 신토불이

Posted December. 18, 2006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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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수입 지난해 12조 원

냉장창고 옆에는 영하 20도의 냉동창고가 있었다. 중국산 냉동마늘과 고추가 들어있는 상자 수백 개가 10m 높이로 쌓여있다.

마늘 상자를 열어보니 깐 마늘이 하얗게 얼어서 조약돌같이 단단하다. 냉동마늘은 녹으면 붉은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그대로 유통되지 않고 다지거나 갈아서 양념에 섞는다.

주변 상온() 창고에는 중국산 양파와 율무가 가득했다. 율무가 들어있는 자루에는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글씨가 제법 크게 적혀 있다.

올해 여름 한국에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국내 양파 작황이 좋지 않았다. 이 때문에 요즘 중국산 양파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산더미처럼 쌓인 중국산 농산물을 보며 기자의 표정이 굳어지자 직원이 말했다.

값이 싸다뿐이지 여기 있는 농산물들이 못 먹을 건 아니에요. 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수입되니까요.

그러나 농산물 수입업계 관계자들은 법 테두리 안에서 수입했다 하더라도 100% 위생적으로 생산된 농산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된 농산물은 130억 달러(약 12조3500억 원)어치. 평택항은 이 중 30%가량을 처리한다. 대부분 중국산이다.

중국산 조기가 영광 굴비로

본보가 최근 입수한 국가정보원 보고서 밥상별곡-외국산 농수산물 불법 유통 실태 및 개선방안에 따르면 이렇게 수입된 농수산물은 갖가지 교묘한 방법으로 국산으로 둔갑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우선 올해 4월 밥쌀용 수입쌀의 판매가 허용된 뒤 외국 쌀과 국산 쌀을 섞어 팔거나 아예 수입쌀을 국산 포대에 담아 파는 이른바 포대갈이가 횡행하고 있다. 최근 2개월간 수입쌀을 국산으로 속여 팔다 적발된 건수는 13건. 쌀의 양도 82t에 이른다.

이들 수입쌀은 황토쌀 등으로 이름을 붙이거나 농업인이 정성으로 재배한 쌀, 즉석 도정 쌀 등의 표현을 넣어 마치 품질 좋은 국산 브랜드처럼 보이게 했다.

또 수입 참깨나 고추 등은 국내 유명 산지()의 밭이나 길가에 흩어 놓아 말리는 것처럼 보인 뒤 제3자를 동원해 수거, 국산으로 둔갑시키는 수법을 쓰기도 한다.

중국산 조기는 전남 영광군에서 말리면 영광굴비가 되기도 한다. 국내산 배추에 중국산 양념을 넣어 담근 김치는 국산 김치로 널리 유통된다.

일부 학교 급식업체도 외국산 사용

국정원은 이들 수입 농수산물이 주로 아파트 일일장이나 시골 장터에서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시골 장은 농민들이 직접 재배한 작물을 내다파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원산지 표시가 허술하기 때문에 수입 농수산물이 유통될 여지가 그만큼 많다.

일부 수입업체는 할머니들을 판매원으로 고용해 지하철역 입구 등에 좌판을 벌여놓고 수입 농산물을 파는 것으로 드러났다. 강원도에선 노인들을 동원해 참깨 밭이랑에 중국산 참깨를 깔아놓고 참깨를 수확하는 것처럼 한 뒤 관광객을 상대로 현장에서 판매하는 수법도 등장했다.

일부 학교 급식업체도 수입산 농수산물을 섞어 납품 단가를 낮추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에 따르면 인천의 D사는 우리 밀을 사용한다고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는 미국산 밀가루로 급식재료를 생산한 뒤 대기업 제품보다 2배 비싼 값에 납품하고 있다.

충북 P사도 중국산 고춧가루를 70%가량 섞어 학교급식 재료로 납품하고 있는데 영양사들을 대상으로 로비를 해 많은 학교에서 이 회사의 고춧가루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보따리상 단속하면 수출도 안 돼

오후가 되자 평택항 여객터미널은 짐을 꾸리는 수십 명의 보따리상으로 붐볐다.

다들 오후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가는 길이다. 이들은 휴대전화 부품 등 전자제품을 갖고 나가 현지에서 팔고 고추 참깨 콩 참기름 등의 농산물을 사온다.

국정원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4000여 명의 보따리상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지난해 들여온 농산물은 1만7778t에 이른다. 올해는 상반기(16월)에만 1만2109t을 들여왔다.

한 명이 한 번에 들여올 수 있는 농산물의 총량은 50kg으로 제한된다. 품목별로 5kg을 넘길 수 없다. 그러나 세관에선 5kg으로 포장된 압축 고추를 1인당 5개까지 들여오는 것은 눈감아 주고 있었다.

세관 관계자는 보따리상들이 농산물을 반입할 때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이들이 중국에 갈 때도 현지 세관에서 한국산 전자제품의 반입을 까다롭게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수입 통관을 까다롭게 하면 수출 길도 막힌다는 것이다.



김선우 홍석민 sublime@donga.com sm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