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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거짓말

Posted September. 19, 2004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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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셀라 보크는 미국의 도덕 철학 전문가다. 그녀는 1978년 거짓말하기라는 책을 냈다. 보크는 거짓말을 열한 가지로 나눈다. 맨 처음 등장하는 것은 하얀 거짓말이다. 상대를 해칠 의도가 전혀 없는 종류로, 플라시보(placebo위약)를 사용하는 것 같은 행위를 의미한다. 그 다음은 핑계를 대는 행위, 위험한 상황에서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하는 거짓말, 악의적인 거짓말쟁이에게 대응하는 거짓말, 동료를 보호하려 하는 거짓말과 기만적인 사회과학 연구 등에 대한 논의가 뒤를 잇는다.

의사는 죽어가는 환자의 공포와 불안을 줄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옳은가. 교수가 추천서를 쓸 때 우수하지 않은 학생을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고 표현하는 것은 도덕적인가. 기자는 부패를 폭로하기 위해 취재원에게 신분을 속여도 괜찮은가. 보크가 제기하는 이러한 질문들은 거짓말이 우리 일상생활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지를 알려준다.

보크가 중요하게 취급하는 거짓말의 하나는 공직자의 기만적 행위다. 1960년 미국인들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U-2기 사건에 대해 거짓말한 사실을 알고는 엄청난 배신감에 휩싸였다. 그는 국민을 속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단단했기 때문이다. 그 뒤 월남전과 워터게이트 사건을 겪으며 정부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진다. 1975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69%의 미국인은 정치 지도자들이 지속적으로 국민에게 거짓말을 해 왔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로 인해 닉슨은 거짓말 때문에 자리를 물러나는 최초의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된다. 그 후 미국 사회에서 정치인의 거짓말에 대한 관용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우리 사회는 비교적 공직자의 거짓말에 관대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 사수() 약속을 깨고도 10년을 더 집권했고, 박정희 장군은 민정이양 공약을 백지화한 뒤 18년을 대통령으로 군림했다. 근거 없는 의원들의 기획폭로회견은 수를 헤아리기도 어렵다. 그나마 최근 정치인의 발언을 철저하게 검증하는 보도가 증가하는 점은 다행이다. 보크는 계획적 거짓말이 가장 나쁘다고 말했다. 적어도 그러한 거짓말은 솎아낼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 재 경 객원논설위원이화여대 교수언론학

jklee@ewha.ac.kr

오명철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