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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초콜릿

Posted February. 13, 2003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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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국 작가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대해 초콜릿술이 가득 든 상자 같은 곳이라고 했다. 미식가의 칭송이 자자한 그곳에선 지금도 200여년 전 유럽을 주름잡았던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여인들과 전희()삼아 즐겼던 음식을 판다. 신선한 굴, 베네치아의 캐비아라는 숭어알 등이 그가 최음제처럼 먹었던 요리다. 그런데 정작 카사노바를 사랑했던 여자들이 그에게 먹이고 싶어 안달했던 건 초콜릿이었다. 왜일까. 먹고 마시는 것의 심리학을 쓴 미국 뉴욕테크놀로지연구소의 부소장 알렉산드리아 로그가 해답을 준다. 어떤 음식이 사랑의 묘약이라는 연구는 나와 있지 않다. 단 초콜릿만 빼놓고는.

초콜릿엔 사랑의 분자라 일컬어지는 페닐에틸아민이 들어 있다. 사랑이 무르익을 때 뇌에서 활발히 분비되는 화학물질이다. 16세기 초 원산지 남미에서 유럽으로 소개된 이래 초콜릿은 스페인 여자들이 이 검은 음료에 꼼짝 못한다고 할 만큼 인기였다. 바로크시대에 들어선 국민을 문란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금지되기까지 했다. 이 같은 사랑물질말고도 초콜릿에 들어 있는 당분과 지방은 우리 몸 속 미각의 유전자가 이끌릴 수밖에 없는 성분이다. 입 속으로 부드럽게 녹아드는 질감과 촉감도 은근히 관능적이다. 초콜릿이 사랑의 선물로 쓰이는 것도 역사적 근거가 있다.

일부에선 국적불명의 밸런타인데이가 초콜릿 상술로 낭비와 사치를 부추긴다고 나무란다. 사랑고백을 하려면 차라리 국적 있는 명절 칠월칠석에 하라고 종주먹을 대기도 한다. 하지만 밸런타인데이가 허황된 서양명절이라 할 수는 없다. 1740여년 전 잔인한 로마황제 클로디우스 2세가 장정들을 전쟁터로 끌고 가려고 금혼령을 내리자 뜨거운 피를 지닌 밸런타인 사제는 죽음을 무릅쓰고 반기를 들었다. 사랑하라, 고백하라, 결혼하라고. 황제의 노여움을 사 감옥에 잡혀간 사제는 그 안에서 운명적으로 간수의 딸을 사랑하게 됐다. 그리고 처형장으로 가면서 그는 연인에게 쪽지를 보냈다. 당신의 밸런타인으로부터.

쪽지가 연인한테 전해졌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분명한 건 교황에게 이 슬프고도 감동적인 사랑 얘기가 전해졌고, 밸런타인은 연인들의 수호성인으로 시성되었으며, 498년 교황 겔라시우스는 2월 14일을 밸런타인데이로 공식 지정했다는 점이다. 이런 아름다운 날 수줍은 젊은이들이 큰맘 먹고 초콜릿으로 애정을 고백하는 것이 그들 집단에서 무지막지하게 뇌물을 주고받는 것보다 더 부도덕한가. 작은 데서 재미와 의미를 찾는 젊은 연인들을 예쁘게 봐줄 수는 없을까.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