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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기름손, 거미손으로

Posted July. 03, 2018 08:23,   

Updated July. 03, 2018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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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컵은 조별리그와 달리 16강전부터 ‘녹아웃 스테이지’다. 무승부란 없다. 연장전, 승부차기까지 끝장 승부를 내야 한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초반부터 승부차기 벼랑 끝에 선 골키퍼들이 신들린 듯한 선방쇼를 선보이고 있다.

 러시아의 이고리 아킨페예프는 1일 스페인과의 16강전에서 승부차기를 2개나 막아내 ‘국민 영웅’에 등극했다. 4년 전 브라질에서 ‘국민 역적’이 됐던 흑역사는 완벽히 지웠다. 그는 월드컵 데뷔전이었던 2014년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인 한국과의 경기에서 이근호의 평범한 중거리 슛을 놓쳐 ‘기름손’이라는 오명을 썼다. 하지만 4년 뒤 주장 완장을 차고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무대에서 아킨페예프는 러시아에 ‘최초 월드컵 8강 진출’을 선물하며 명예 회복에 성공했다.

 크로아티아-덴마크의 16강전은 ‘거미손 골키퍼 대결’의 진수를 보여줬다. 승부차기에서 장군 멍군으로 2차례씩 선방을 주고받은 뒤 마지막에 웃은 건 덴마크의 마지막 승부차기를 막아낸 크로아티아의 수문장 다니옐 수바시치였다. 2016∼2017 프랑스 리그1 올해의 골키퍼상 수상자인 수바시치의 마지막 선방으로 8강 진출이 확정되자 크로아티아의 팀 동료 도마고이 비다는 그를 어깨 위로 들어 올린 뒤 내동댕이치며 극적 승리를 축하했다. 크로아티아는 8강에서 개최국 러시아를 만난다. 각국의 ‘영웅’이 된 골키퍼들이 외나무다리에서 다시 승부를 벌이게 된 셈이다.

 비록 경기는 패했지만 크로아티아-덴마크 경기의 ‘최우수선수(MOM)’는 덴마크 골키퍼 카스페르 슈마이켈에게 돌아갔다. 슈마이켈은 이날 승부차기에서 2개의 선방이 ‘덤’에 불과할 정도로 경기 내내 슈퍼 세이브를 펼쳤다. 연장 후반 크로아티아의 에이스 루카 모드리치의 페널티킥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막아낸 그는 승부차기를 포함해 연장에만 세이브 3개, 전후반에도 이미 2개씩 세이브를 기록해 이날 총 7개의 세이브를 올렸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적인 골키퍼였던 그의 아버지 페테르 슈마이켈도 이날 경기장을 찾아 아들의 선방 때마다 번쩍번쩍 뛰었다. 골과도 다름없는 슛을 7차례나 막고도 경기에서 패한 슈마이켈은 “당장은 여러 감정이 든다. 오늘 페널티킥 상황에서는 순간적인 직관을 따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지막 승부차기까지 막기에는 충분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임보미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