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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김병종의 순애보

Posted January. 20, 2017 08:34,   

Updated January. 20, 2017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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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진 동양화가인 서울대 미대 김병종 교수와 화려한 문체의 소설가 정미경 작가는 금슬 좋은 잉꼬부부였다. 일곱 살 터울인 둘은 쏙 빼닮았다. 중앙일보 신춘문예(희곡부문)에 뽑힌 문재(文才)와 이때껏 건강검진을 단 한차례 받지 않은 것까지…. 김 교수가 평생의 반려였던 아내와 18일 새벽 이별했다.

 ▷고인은 전주 출생으로 어릴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다. 1978년 이화여대 영문과에 입학한 뒤에도 혼자 책 읽고 글쓰기에 빠져 살았다. 대학 재학 중 학내 문학상의 중편 단편 희곡 분야를 휩쓸었다. 트렌디하고 도회적인 감각의 빼어난 글 솜씨로 이화 백주년 기념문학상(1982년)과 오늘의작가상(2002년), 이상문학상(2006년)을 수상했다.

 ▷둘의 인연은 고교생 잡지인 ‘대학입시’가 맺어줬다. 이 잡지에서 각 대학을 소개하는 기획 연재를 했다. 먼저 김 교수가 서울대 편을 썼고, 그 다음호에 고인이 이화여대 편을 썼다. 그 글을 보고 김 교수가 팬레터를 보낸 게 연애의 시작이다. 두 사람은 편지만 6개월 넘게 주고받았다. 고인이 대학을 마치자마자 둘은 결혼했다.

 ▷꼭 한 달 전 간암말기 판정을 받은 아내는 “남은 시간을 가족과 보내겠다”며 치료를 거부했다. 고인 뜻대로 과천 집 서재에서 둘은 함께 지냈다. 결혼 후 30여 년간 아침이면 식사 후 커피를 마시며 두 시간 넘게 문학과 예술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둘은 ‘예술적 동지’였다. 고인은 한번도 작가 티를 내지 않고 김병종의 작품을 관리하고 일상을 챙겨준 매니저이자 어머니였다. 김병종은 “아내는 눈을 감으면서도 나를 걱정했다”고 했다. 고인은 ‘유아(幼兒)성’과 ‘예술에 대한 열정’ 때문에 더욱 그를 사랑했다. 김병종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아내와의 교류의 진폭이 하루아침에 끊어져 정신적 공황에 빠질 것 같다“고 토로했다. “느닷없이 ‘세계가 흔들리는 순간’을 언어로 포착한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한, 그래서 더욱 매혹적인 꿈”이라고 고인은 생전에 말하곤 했다. 창작에 대한 목마름을 간절하게 표현했던 고인.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