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농무의 서러움 황혼에 묻고 낙타 타고 돌아온 길 위의 시

농무의 서러움 황혼에 묻고 낙타 타고 돌아온 길 위의 시

Posted February. 22, 2008 03:37,   

日本語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낙타 중)

그의 인생이 낙타 같았을 것이다. 한순간도 정주하기를 꺼렸던, 늘 떠나고자 채비를 하던 신경림(73) 시인. 21일 만난 그는 여행 다니고, 등산 다니고, 가끔 학교(동국대 석좌교수)에서 특강하고라는 답으로 근황을 전했다. 집에 앉아 책만 읽는 것은 체질이 아니라고 했다.

그가 열 번째 시집 낙타(창비)를 출간했다. 뿔 이후 6년 만이다. 시력 52년의 내공이 느껴진다는 지인들의 얘기가 들려왔다. 생을 마친 뒤 저승길을 갈 때, 다시 이승으로 돌아올 때 낙타를 타겠다는 표제시 낙타의 마지막 부분이 뜨끔하다.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을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이번 시집에선 특히 터키와 네팔, 미국, 프랑스 등지에서 쓰인 여행시가 눈에 띈다. 신발이 너덜너덜 해지고/ 비바람과 흙먼지와 매연으로/ 누렇게 퇴색(나의 신발이 중)할 만큼 그의 시는 길 위에서 쓰인 것이다.

요즘 외국에 많이 다니게 됐어요. 그동안 민족에 갇혀 있었다고 할까요. 좀처럼 바깥에 나가지 않았는데. 그런데 해외에 다녀보니 사는 게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모습, 사람 사이의 인정 같은 것들.

그러고 보니 이번 시집에 실린 산문을 비롯해 시인은 기회 있을 때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문학성이라고 얘기해왔다.

통일이나 노동 문제를 다루지 않은 시가 어찌 오늘의 좋은 시가 될 수 있는가라는, 강풍처럼 몰아치던 일부 과격한 질타를 차단하니 시 쓰는 일에 비로소 신명이 났고, 시에 활기도 생겼다고.

물론 시는 그것이 속한 사회의 상상력에서 빚어지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아름다움이라고 신 씨는 말한다. 그래서 과하게 힘 들어가지 않은, 편안하게 쓰인 새 시편들의 울림이 크다.

새 시집에서 그는 세상은 즐겁고 서러워 살 만하다(귀로에)고, 이룬 것이 없어 아름답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 아름답고, 아무것도 남길 것이 없어 아름답다(그 집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없다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노래하는 것은 오랜 생을 치러낸 연륜의 시인이어서 가능한 것이다. 영감에 의해 언어의 구조물을 짓는 시인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냐고 하자, 노 시인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시는 건달이 쓰는 거야.

눈이 둥그레지자 시인은 웃으며 설명을 더했다. 시가 뭐, 사는 데 꼭 필요한 건가. 그러니 모범생은 시 못 쓰지. 시는 세상을 있었던 방식으로 보게 해주는 게 아니니까. 다르게 보여주는 거니까.



김지영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