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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산업의 위기 극복은 피터팬 기업 없애기부터

한국 산업의 위기 극복은 피터팬 기업 없애기부터

Posted December. 03, 2025 08:27   

Updated December. 03, 2025 08:27


2010년대 이후의 한국 경제 저성장을 상징하는 단어가 적지 않지만 ‘피터팬 기업’만큼 문제의 핵심을 잘 짚은 단어도 드물 것이다. 성인이 된 뒤에도 아이로 남으려는 어른처럼, 의도적으로 성장하기를 거부하는 기업은 더 이상 기업이라 하기 어렵다. 그런 기업들이 모인 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리도 없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10년 넘게 그런 피터팬 기업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언론이 피터팬 기업이란 이름을 붙이고 처음 주목한 시점이 2012년이다.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가 중소기업 279곳을 조사했는데 10곳 중 3곳이 중소기업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인위적인 구조조정, 분사(分社), 공장 해외 이전 등을 했다고 답했다. 기업이 성장이 아니라, 성장하지 않기 위해 역량을 투입하고 있다는 점이 밝혀지며 우려의 목소리가 각계에서 나왔다.

당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발돋움하는 순간 160개 혜택이 사라지고 84개 규제가 추가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올 9월 김영주 부산대 교수팀이 진행한 같은 조사에선 추가 규제의 수가 94개로 10개 더 늘어났다. 기업 몸집이 조금만 커져도 세금, 연구개발(R&D), 금융 등 다양한 지원이 끊긴다. 성장으로 얻는 대가보다 ‘성장통(痛)’이 훨씬 크니 많은 기업이 성장 회피를 택한다. 소기업 경영인 사이에선 “매출 1억 원을 줄여 소기업 혜택을 유지하는 게 매출 10억 원을 늘리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다.

한국 경제는 피터팬 기업이 처음 주목받았던 2012년 2.4% 성장에 그치며 본격적인 2∼3%대 저성장 궤도에 진입했다. 물론 저출산·고령화, 중국의 제조업 공습 등 다른 구조적인 문제가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의 뿌리인 중소기업 상당수가 인력과 매출의 성장을 인위적으로 막는 데 골몰하는 상황에선 고성장은 남의 나라 얘기일 수밖에 없다. 이제는 대기업 규제를 적용받는 것이 두려운 우량 중견기업까지 피터팬 기업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지난 13년 동안 피터팬 기업 해결을 위한 여러 해법이 제시됐다. 지난해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중소기업에 최대 7년 동안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대책이 나왔다. R&D 세액공제도 유예 적용받을 수 있는 길을 터 줬다. 다만 다소 늦은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이미 한국 기업들의 평균 종업원 수는 2016년 43명에서 2023년 40.7명까지 쪼그라들었다.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가 다시 중소기업으로 회귀한 기업은 2023년 한 해만 570여 곳에 달했다. 2020∼2023년 중소기업 1만 곳 가운데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은 단 4곳(0.04%)뿐이었다. 첫 경고음이 울린 2012년 제때 대응하지 못했던 것이 10년 넘게 한국형 저성장을 가속화시킨 결과를 낳았다.

해결 방안은 쉽지는 않겠지만 간단하다. 기업들이 성장해야만 하는 생태계를 만들면 된다. 기업 규모에 따른 단순 지원을 줄이고, 성장하는 기업을 추가 지원해야 한다. 민간에선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을 찾아서 ‘포상(리워드)’을 주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성장을 두려워하는 기업과 국가에 미래는 없다. 내년은 피터팬 기업이 사라지는 원년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