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재판소는 4월 12·3 비상계엄을 발동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 선고에서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하였다”고 지적했다. 총체적 정치 실패 원인이 윤 전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조율되고 해소되어야 할 정치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정치권에도 강력한 경고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계엄 1년이 지난 지금도 헌재가 지적했던 ‘관용과 자제’, ‘책임정치 실현을 위한 국민 설득’은 여전히 우리 정치권에서 실종돼 있다는 지적이다. 비상계엄이라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고도 쇄신과 반성은 사라지고 강성 지지층에 기대는 분열의 정치가 더욱 극단화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여전히 탄핵의 늪에 빠져 국민 설득의 전제 조건인 당 쇄신 작업엔 나서지 못하고 있다. 12·3 계엄 1년을 앞둔 1일에도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인천 미추홀구에서 진행한 국민대회에서 “경제와 민생을 살릴 유일한 길은 이재명 정권 조기 퇴진”이라며 “해산해야 할 정당은 민주당”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관용과 자제 대신 수적 우세를 앞세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프랑스 공화국은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았다”며 “완전한 내란 청산”을 강조했다.
아직 계엄의 강을 건너지 못한 여야와 정치의 실종은 국민 피해로 돌아오고 있다. 여야 지도부가 독재, 내란 세력, 탄핵 등을 거론하며 대치하는 사이 계엄의 상처와 피해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민생법안들은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갈등 해소가 정치의 가장 큰 기능 중 하나인데, 지금은 공존보다는 상대를 악마화하면서 존재를 부정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정치는 당파의 이익이 아닌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준일 jikim@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