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계를 겨냥한 의도가 불명확하고 갑작스러운 단속에 큰 충격을 받았다.”
미국 뉴욕에서 이민자 권익 활동 펼치는 김갑송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미교협) 국장은 6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공포와 분노가 한인 사회를 휩쓸고 있다며 이같이 전했다.
미국에서 해외 글로벌 기업의 대규모 투자 사례 중 하나로 꼽혀온 조지아주 서배너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합작 공장(HL-GA)에 4일 미 이민 당국이 들이닥쳐 한국인 직원 300여 명을 체포한 뒤 구금하자 동맹국을 상대로도 ‘안전지대는 없다’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서배너 현지에 직원을 긴급 파견해 통역 등 구금된 HL-GA 직원을 대상으로 한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는 김 국장은 “이번 단속으로 조지아주 전반에서 신규 공장 건설에 큰 차질이 생긴 것으로 파악된다”며 “일부 한국 기업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공장 건설을 일시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 한국 기업 다수 진출한 조지아주에서 발생해 ‘더 충격’
조지아주는 한국의 대미 투자 거점으로 꼽힌다. 현대차그룹(서배너), SK온(커머스), 한화큐셀(돌턴) 등 한국 기업 110곳 이상이 진출해 있다. 한국 기업의 지역사회 기여도가 높은 조지아주에서 한국인을 겨냥해 미국 국토안보부(DHS) 산하 이민세관단속국(ICE), 연방수사국(FBI), 마약단속국(DEA) 등 연방 기관이 협동해 역대 최대 규모의 이민 단속을 펼치자 한인 사회가 느끼는 배신감도 상당하다.
한 현지 교민은 “주말을 앞두고 한국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던 코스트코와 시내 식당가가 텅텅 비었다”고 말했다. 이 교민은 “부당한 단속에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일단 외출도 하지 않는 한인들이 많다”며 “한국 기업의 투자 덕분에 경기가 살아나던 지역들이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애틀랜타를 거점 도시로 두고 있는 조지아주는 미 50개 주 중에서 캘리포니아, 뉴욕, 텍사스, 워싱턴, 뉴저지, 일리노이주에 이어 한인 수가 7번째로 많은 지역이다. 2023년 재외동포 현황에 따르면 조지아주에는 애틀랜타를 중심으로 한국계 미국인(시민권자), 영주권자, 유학생, 주재원 등 총 10만2061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조지아주 인구의 약 1%에 해당하는 규모다.
한국계 샘 박 조지아주 하원의원 등 조지아 주의회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도널드 트럼프식 공포와 분열의 정치로 얼룩진 단속”이라며 “조지아주의 번영에 기여할 공장을 짓기 위해 목숨 걸고 일하는 비(非)백인 근로자를 의도적으로 겨냥했다”고 지적했다. 앤디 김 상원의원, 데이브 민 하원의원, 매릴린 스트리클런드 하원의원 등 한국계 민주당 의원이 소속된 미 연방의회 아시아퍼시픽계 미국인 코커스(CAPAC)는 “트럼프 행정부가 정한 추방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비백인 이민자들의 직장을 겨누고 있다”고 비판했다.
● 다른 지역 한인 사업체로도 단속 확산될까 우려
트럼프 행정부의 대대적인 이민 단속이 다른 지역의 한인 사업체를 대상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HL-GA 단속 전날인 3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코리아타운에서도 이민 당국의 기습 단속이 벌어졌다. 이날 한인 소유 세차장에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세관국경보호국(CBP) 요원들이 나타나 10여 분 만에 라틴계 직원 5명을 체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리아타운이민자근로자연합(KIWA)은 “비인간적이고 갑작스러운 단속이 지역 사회를 극심한 불안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판 성명을 냈다.
단속이 예외 없이 거칠고 갑작스럽게 진행됐다는 점도 불안을 키우고 있다. 이민 당국은 한국인 직원들에게 케이블타이 수갑을 채우고, 직원들을 줄지어 세운 뒤 가방을 수색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5일 “(체포된 한인은) 불법 체류자로 안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트럼프 지지층 일부에서 강하게 갖는 ‘외국인은 범죄자’라는 인종 차별적 인식에 기름을 부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국장은 “최근 이민 당국의 단속과 체포는 비백인 이민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이번 HL-GA 사태도 ‘미국을 다시 하얗게(Make America White Again)’라고 표현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이민 단속의 특성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지윤기자 asap@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