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관세 유예 시한을 일주일 앞두고 한국 경제·안보 수장과 미국 측의 고위급 회담이 모두 무산됐다. 미일 관세 타결에 이어 유럽연합(EU)도 미국과의 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는데 한국은 만남조차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24일 오전 9시경 인천국제공항에서 한미 2+2 통상 협의를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려던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출발 1시간 전쯤 미국 측의 회담 취소 통보를 받았다. 당초 25일 미 워싱턴에서 구 부총리와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 측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만나 한미 2+2 통상 협의를 할 예정이었다. 관세 협의의 ‘키맨’으로 꼽히는 베선트 장관과의 첫 새 정부 경제 수장과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미국 측이 베선트 장관의 긴급한 일정을 이유로 연기를 요청하면서 협의가 무산됐다. 미국 측은 연기 사유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기재부 측은 “미국에서 이메일로 연기를 요청하며 여러 차례 미안하다고, 조속한 시일 내 일정을 다시 잡자고 했다”며 “협상과 관련한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취재진이 있는 출국장 현장에서 구 부총리가 미국의 일방적 통보로 발길을 돌려야 하는 상황을 두고 정부 내부에서도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역력한 상태다.
이날 귀국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도 나흘간의 방미 일정 중 카운터파트인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과 면담하기 직전에 트럼프 대통령의 호출로 제대로 된 만남이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위 실장은 20일 극비리에 미국으로 향했지만 러트닉 상무장관 등을 만나고 돌아왔다.
대통령실은 “한미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긴밀한 협의를 하고 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한국의 협상안이 만족스럽지 않은 미국 측의 압박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요구하는 협상의 두 지렛대인 ‘투자 확대’와 ‘농축산물 시장 개방’ 양쪽에서 만족할 만한 카드를 가져오라는 경고라는 해석이다.
한국 정부는 쌀·소고기 시장 확대 등 민감한 사안은 협상 테이블에 올리지 않고, 대신 조선·자동차·반도체·에너지 구매 및 투자 패키지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국방비 증액 등 안보 협상을 병행하려 했다. 하지만 준비한 대미 투자 규모 등이 일본(5500억 달러)에 크게 미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미국이 협상 타결 전 일본을 여러 차례 압박했듯이 우리에게도 통상 압력을 강화하는 차원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주애진 jaj@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