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땜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뿌듯이 주고 갑시다/기꺼이 삶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하략)” ―도종환 ‘접시꽃 당신’ 중에서
청소년 시절, 이 시가 들어있는 시집을 읽었다. 시집은 그만큼 어마어마하게 많이 팔렸다. 먼저 세상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의 순애보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접시꽃 당신’은 그렇게만 읽어도 무방한 작품이 아니었다. 예술작품은 읽는 사람이 해석하기 나름이라지만, 시인의 시선은 아내 쪽으로만 향하지 않았다.
시인은 자신의 슬픔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제 자신을 나눌 수 없는 날들을 아파해야 한다며, 곧 떠날 아내에게 남은 몸뚱어리마저 주고 떠나자는 시인의 호소는 종교인의 이타주의처럼 다가왔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던 사춘기 시절, 시 구절은 화살처럼 박혔다.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들과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그 후 도종환 시인이 더 많은 시집을 내고, 그 시집을 계속 읽는 사이 30년 넘는 시간이 지나갔다. 이 시처럼 살았느냐고 묻는다면 그러지 못했다고 고백해야 마땅하다. 지나온 삶은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지 알려주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이따금 빈 통장을 털어 어딘가에 꾸준히 돈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이 시를 잊지 않고 계속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도움을 청할 때 망설이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이 시 덕분이었다. 시인도 변하고 나도 변했겠지만 어떤 문장과 다짐은 영원히 그곳에 남아 우리를 지켜본다. 그 긴장과 부끄러움이 가까스로 나를 지켜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