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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상처 받아야 또 살아갈 수 있다

Posted December. 17, 2021 07:48   

Updated December. 17, 2021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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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이유를 묻지 못한 채 갑작스레 아내의 죽음을 맞는다. 2년 후 히로시마의 연극제에 초청돼 작품을 연출하게 된 가후쿠는 그곳에서 자신의 전속 운전사 미사키(미우라 도코)를 만난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두 사람이 서서히 관계를 맺으며 상처로 봉인됐던 마음이 회복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이 영화는 올해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고, 내년 골든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23일 국내 개봉에 앞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43)을 16일 화상으로 만났다. ‘해피 아워’(2015년), ‘아사코’(2018년), ‘스파이의 아내’(2020년)로 이름을 알려온 그는 이번 영화로 세계가 주목하는 일본의 젊은 감독이 됐다. 그는 “상과 함께 좋은 평을 받아 고생한 분들에게 보답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박유림 등 한국 배우 및 스태프와 협업했다. 그는 “11년 전 한국영화아카데미와 ‘심도’를 공동 제작했다. 가장 가까운 나라인 한국에서 일본과 다른 지점들이 있다는 게 많은 자극이 됐는데, 다시 함께 일할 수 있어 기뻤다”고 했다.

 영화는 2014년 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72)의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프로듀서의 첫 제안은 하루키의 다른 단편을 영화화하자는 것이었지만 감독은 “‘드라이브 마이 카’라면 만들 수 있다”며 역으로 제안했다. 그는 “소설이 인물의 내면을 그린다면 영화는 움직임이 중요하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는 자동차가 등장해 차의 움직임이 인물의 행동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했다”고 했다.

 가후쿠는 끝내 “나는 제대로 상처받았어야 했다”며 고통을 마주한다. 이는 하루키의 같은 소설집의 단편 ‘기노’에서 나온 “나는 상처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받지 않았다”는 대사를 각색한 것. 감독은 “가후쿠는 자신과는 물론 부부 관계에서도 스스로를 과대평가했다. 생각만큼 강하지 않은 자신을 직시하는 과정에서 타자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 그걸 깨달아야 타자와의 관계가 비로소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운전하는 장면에서는 침묵이, 연극을 연습하는 장면에서는 일본어 한국어 영어 수어 등 다양한 언어가 나온다. 같은 언어를 쓰지 않아도, 말을 하지 않아도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음을 보여준다.

 “어쩌겠어요. 또 살아가는 수밖에요.” 영화 말미, 가후쿠에게 수어로 전하는 이 대사는 우리에게도 ‘함께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전한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