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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에 천국의 선율을 불어넣은 별이 지다

시네마에 천국의 선율을 불어넣은 별이 지다

Posted July. 07, 2020 07:41   

Updated July. 07, 2020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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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의 영화음악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가 6일(현지 시간) 별세했다. 최근 낙상으로 대퇴부 골절상을 입어 치료를 받다 로마의 한 병원에서 숨졌다. 향년 92세.

 고인은 타고난 음악가였다. 트럼펫 연주자인 부친 아래 어려서부터 트럼펫 연주와 작곡을 단련했다. 첫 곡은 6세 때 썼다. 12세에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에 들어갔다. 4년짜리 화성학 수업 과정을 반 년 만에 끝냈다.

 클래식 음악가를 꿈꿨지만 라디오와 TV 음악가로 생계를 꾸렸다. 영화음악가 데뷔작은 1961년 루차노 살체 감독의 ‘파시스트’.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예술영화 음악, 아방가르드와 재즈 음악 작곡 활동으로 분주하던 그에게 대중의 주목을 가져다준 이는 오랜 창작 파트너, 세르지오 레오네(1929∼1989)다. 1960년대 마카로니 웨스턴 열풍을 가져온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 등 무법자 3부작. 특히 마지막 편 ‘황야에 돌아오다’의 휘파람 주제곡은 서부영화의 상징이 돼버렸다. 같은 영화에 실린 ‘The Ecstasy of Gold’는 메탈리카가 모든 콘서트의 오프닝에 트는 곡이다.

 관현악, 합창음악, 팝, 록에 두루 능했던 모리코네는 세계 영화음악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예산과 시나리오의 제약을 창의로 극복하는 노력과 천재성 덕분이다. 마카로니 웨스턴 시절에는 변변찮은 제작비 탓에 대규모 관현악단 대신 휘파람, 총격 소리, 전기기타 등을 리드미컬하게 활용했다. 트럼펫 전공자로서 관악에 대한 전문성도 독특한 음악세계에 일조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년)의 쓸쓸한 팬플루트 테마, ‘미션’의 성스러운 오보에 테마는 단 한 번만 들어도 각인되는, 모리코네가 빚어낸 신비로운 선율이다. ‘미션’의 ‘Gabriel's Oboe’는 팝페라 새라 브라이트먼이 가사를 붙인 ‘Nella Fantasia’로도 널리 알려졌다. 모리코네가 지은 여러 영화음악 선율은 지금껏 브루스 스프링스틴, 허비 행콕, 요요마, 다수의 클래식 오케스트라가 끝없이 재해석했다.

 재즈와 아방가르드 음악도 파고들었던 그는 대중적 작곡 못잖게 영상의 서스펜스를 극대화하는 작법에도 능했다. ‘엑소시스트 2’(1977년), ‘괴물’(1982년), ‘언터처블’(1987년), 그리고 그에게 88세에야 첫 아카데미상을 안긴 2015년작 ‘헤이트풀8’ 등이 그 예다.

 그렇다 해도 ‘모리코네 월드’를 구축한 것은 애잔한 선율이다. ‘시네마천국’(1989년), ‘피아니스트의 전설’(1998년)을 수놓은 멜로디는 영화의 스토리와 함께, 또는 그와 전혀 별개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었다. 2007년 첫 내한공연은 오케스트라와 어울리지 않는 장소(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로 우려도 낳았지만 후반부 대표곡 메들리로 1만6000여 관객의 눈시울을 적셨다. 2009년과 2011년에도 한국 무대에 섰다.

 모리코네는 할리우드 영화음악 작업 역시 고국 이탈리아에서 매진하며 각광에서 멀리 떨어져 일생을 보냈다. 이탈리아의 멜랑콜리를 세계에 알렸다. ‘시네마천국’을 함께 만든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크릿 레터’(2016년)가 500편이 넘는 모리코네 필모그래피의 마침표가 됐다. 장례는 고인의 뜻을 받들어 소박한 가족장으로 치를 계획이라고 유족은 밝혔다. 구체적 일정은 알려지지 않았다.


임희윤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