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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모든 테너 중 가장 ‘위대한 목소리’

현대의 모든 테너 중 가장 ‘위대한 목소리’

Posted December. 23, 2019 07:29   

Updated December. 23, 2019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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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론 하워드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파바로티’는 사운드트랙의 절반가량이 자코모 푸치니(1858∼1924)의 오페라 아리아들로 채워진다.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1935∼2007)는 푸치니 오페라의 탁월한 해석자였지만, 영상으로 재구성한 그의 삶이 푸치니의 인생을 떠올리게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키가 컸고 친절했다. 우수(憂愁)와 댄디함이 앞섰던 푸치니와 비만한 몸에 양팔을 벌리며 천진하게 웃는 파바로티는 많이 달라 보인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여성들로 가득한 대가족 속에서 어려운 유년기를 보낸 뒤 세계인을 매혹하는 성악예술의 거장이 됐다.

 여성에 대한 사랑에서 삶과 예술의 자극을 구한 점도 닮았다. 사람들은 파바로티가 오페라 스타로서의 삶을 함께한 부인과, 비서 출신인 두 번째 부인만을 알고 있었다. 스포일러를 무릅쓰고 밝히면 오랜 관계를 유지했던 제3의 인물이 등장한다. ‘비서’도 사실은 비서가 아니었다.

 영화는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의 정석에 충실하다. 의외성은 없다. 그 대신 이 흥미로운 예술가의 삶 자체가 화면에 빠져들 재미를 길어 올린다.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빈부터 ‘동료’ 플라시도 도밍고와 호세 카레라스, 어릴 때 그의 방중 소식에 흥분했던 피아니스트 랑랑까지,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자료화면과 증언으로 스크린을 수놓는다.

 1990년대 이후 오페라 무대를 멀리하며 록밴드 U2의 보노를 비롯한 대중음악가들과 함께하는 무대에 오른 건 오랜 팬들과 평론가들로부터 따가운 비판을 불러왔다. 만년 자선사업에의 공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감독은 파바로티 주변인들의 입장을 충실히 전한다. 다이애나 빈을 비롯한 명사들과의 교류 및 만년의 새 사랑 니콜레타의 관심사가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이끈 것이라고.

 영화가 보여주지 않는 사실은 이랬을 것이다. 파바로티의 선택은 나름대로 영리했다. ‘당시의 파바로티’가 ‘과거의 파바로티’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활동의 범위를 확장했던 것이다. 거의 마지막까지 그의 목소리는 햇살과 같이 따사롭고 찬란한 빛깔을 유지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를 제어하는 힘의 쇠퇴, 특히 호흡이 짧아져 반주자와 동료 성악가들이 템포를 맞춰 줘야만 하는 일은 1990년 첫 스리테너 콘서트부터 명백했다.

 파바로티는 현대에 출현한 모든 테너 가운데서도 가장 위대한 ‘악기’, 그의 발성기관을 자랑할 수 있었다. 전성기에는 그 악기를 연주하는 솜씨도 경탄의 대상이었다. ‘라이벌’이었던 도밍고는 “파바로티는 입만 벌리면 모든 소리를 다 냈다”고 영화에서 증언한다. 그러나 그 악기를 관리하는 솜씨는 파바로티가 도밍고보다 하수였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이자 오페라 무대의 단짝이었던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가 한마디도 들려주지 않은 점은 의아하다. 손녀의 출생과 함께 ‘옛 가족’과 ‘새 가족’이 화해한 점은 강조하지만, 파바로티가 사망한 후 유산 분배를 둘러싼 충돌은 언급하지 않는다. 문제들이 해소됐기 때문에 이 영화가 나온 것일까.

 1977년, 그의 첫 내한 실황 방송을 녹음해 그해 겨울 내내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영화를 봤다. 헤어진 부인 아두아는 말미에 “그는 보통 사람보다 한 수 위였다. 잘 베풀었으며 특히 위대한 가수였다”고 회상한다. 그런 삶을 훑어보는 일이 행복했다. 함께한 음악은 ‘덤’이라기엔 너무 아름다웠다. 12세 이상 관람가. 2020년 1월 1일 개봉.


유윤종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