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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파도가 삼킨 소수언어... 3개월에 한개꼴 사라져

디지털 파도가 삼킨 소수언어... 3개월에 한개꼴 사라져

Posted October. 24, 2018 07:30   

Updated October. 24, 201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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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가 없는 국가는 심장이 없는 국가나 마찬가지다”

 영국 남서부에 있는 웨일스의 유명한 속담이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도구에 그치는 게 아니라 한 공동체의 문화와 세계관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점을 짚어낸 말이다. 이 지방 토착언어인 웨일스어로는 ‘cenedl heb iaith, cenedl heb galon’라고 쓴다. 웨일스어는 현재 유네스코가 지정한 ‘취약언어’ 중 하나다.

 주요국 언어 위주로 구성된 디지털 생태계가 유럽의 소수언어의 존속을 위협하고 있다. 대부분의 글로벌 인터넷 서비스가 영어나 프랑스어 등 주요국의 언어로만 이용할 수 있어 소수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의 젊은 세대들이 모국어보다 주요국의 언어에 더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모국어 교육에 실패하면 그 언어는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소멸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7일 영어가 아이슬란드어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옛 노르드어를 아직까지 지키고 있는 아이슬란드는 외래어도 철저히 자국어로 다듬어 사용할 정도로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이 각별하다. 34만여 명만이 아이슬란드어를 쓰지만 이들은 700년 전 고문헌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자신들의 언어를 지켜왔다.

 그러나 이런 아이슬란드조차도 최근 들어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어려서부터 인터넷을 통해 영어로 서비스되는 영화와 TV프로그램을 접해 온 아이슬란드의 젊은 세대들에게 영어가 더 익숙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 따르면 아이슬란드의 15세 이하 어린이와 청소년 4명 중 한 명은 모국어를 사용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화폐가치가 낮아지며 아이슬란드가 관광지로 급부상 한 것도 한 몫을 했다. 음식점이나 상점에서 영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이제 아이슬란드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다.

 유네스코는 2100년까지 전 세계 7000여 개 언어 중 절반이 소멸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언어학자 데이비드 크리스탈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언어는 3개월에 하나씩 소멸하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은 이 속도에 기름을 부었다. 영국 의회 소속 언어평등 연구원 질 에반스는 지난달 의회 잡지 칼럼을 통해 “디지털 세대는 유럽의 언어에 훨씬 더 광범위한 문제를 안겼다”고 경고했다.

 에반스는 글로벌 인터넷 서비스에 소수언어를 포함하려는 노력이 언어 소멸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자동 번역, 음성 인식, 텍스트 음성 변환 등의 기술에 다국적 언어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다양한 언어를 디지털로 변환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옥스퍼드대학 출판사는 ‘옥스포드 글로벌 언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말레이어, 로마어 등 언어를 디지털 사전으로 출판하고 있다. 사용 인구가 많은 언어부터 시작해 언젠가는 소수언어까지도 인공지능이 인식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전채은기자 chan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