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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려갔던 3500km, 그 길을 되밟아 고국 품에

끌려갔던 3500km, 그 길을 되밟아 고국 품에

Posted September. 19, 2015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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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께선 둘째 아들이 보고파 밤낮으로 눈물을 훔치다 결국 눈가가 짓물러졌다고 들었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사연을 전하는 김경수 씨(65)의 눈이 젖어들었다. 18일 오전 11시 부산 중구 연안여객터미널 앞 수미르공원에서 만난 김 씨의 품에는 삼촌 김익중 씨의 유골함이 들려 있었다. 전북 고창군에 살던 삼촌은 1942년 일본군에 의해 일본 홋카이도()로 끌려갔다. 당시 삼촌의 나이는 18세. 삼촌은 일본 건설회사 등에서 일하다 2년 만에 폭격으로 숨을 거뒀다고 합니다.

김 씨의 삼촌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강제로 징용됐다가 돌아오지 못한 채 숨을 거둔 조선인 희생자 115명이 한 줌의 가루가 돼 고국으로 돌아왔다. 70여 년 만의 귀향이었다. 대부분 홋카이도의 일본군 비행장, 댐 건설 현장 등에서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다 짧은 생을 마감했다.

1997년부터 강제징용 희생자 유골을 수습해 온 홋카이도 강제노동 희생자 추모유골 귀환 추진위원회 관계자들은 18일 오전 8시경 부산항에 도착했다. 추진위 관계자 30여 명은 위패를 앞세운 채 광목에 쌓인 목관 18개를 나눠 들고 한 줄로 늘어서 입국장에 나타났다. 추진위 한국 측 단체인 사단법인 평화디딤돌 정병호 대표는 그분들이 끝내 건너지 못했던 바닷길을 이번에 넘어왔다. 양심적인 일본의 종교인, 활동가 분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다.

추진위 일본 측 대표단체인 동아시아시민네트워크 도노히라 요시히코() 대표는 희생된 분들이 돌아오는 데 70년이나 걸려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는 요즘 일본에선 집단 자위권 법안 때문에 크게 혼란스러운데 이번 봉환을 통해 두 나라가 다시는 전쟁을 겪지 않고 평화의 미래로 함께 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추진위 일행은 인근 수미르공원으로 이동해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기 위한 진혼제를 열었다. 이곳은 과거 강제 징용 조선인들이 일본행 관부연락선을 탔던 곳이다. 앞서 추진위는 11일 유골이 모인 홋카이도 후카가와() 시의 한 사찰에서 귀향을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홋카이도 여러 지역을 거쳐 14일 도쿄()에 도착한 뒤 교토() 히로시마() 등을 거쳐 부산에 왔다. 당시 조선인들이 끌려갔던 약 3500km의 여정을 거꾸로 밟아온 것이다.

부산을 떠난 유골은 18일 오후 서울 중구 성공회성당에 임시 안치됐다. 19일 오후 7시 서울광장에서는 시민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례식이 엄수되고, 20일 오전 경기 파주시 서울시립추모공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부산=강성명 기자 sm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