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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기적, 대동강의 기적

Posted March. 13, 2015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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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서울 한 가운데를 흐르고 대동강은 평양 한가운데를 흐른다.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가 어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주최의 토론회에서 북한의 현 정권을 인정하고 박정희 식 개발독재 비전을 이식해 대동강의 기적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노하우를 김정은 독재 정권에게 전수하면 북한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말은 그럴 듯한데 나이브하다.

좌 교수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장 출신이다. 보수적인 시장경제학자의 발언을 누구보다도 반긴 것은 진보 진영이다. 박정희 독재를 히틀러 독재에 비교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던 진보 진영이지만 박정희 개발독재 노하우를 김정은에 전수하자는 데는 박수를 보냈다. 이것은 비판만 하던 박정희 개발독재의 성과를 은연 중에 인정한 것이긴 하지만 잘못된 전제를 깔고 있다. 박정희나 김정은은 다 비슷한 독재자이고 박정희가 한 것을 김정은이라고 못하겠느냐는 것인데 사실 진보 진영 스스로도 믿지 못할 전제다.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켰던 독일은 통일 후 옛 동독 지역에서 엘베강의 기적을 일으켰다. 오염 물질만 가득한 엘베강이 정화되고 엘베강가의 드레스덴은 현대적인 공업도시로 거듭났다. 그러나 엘베강의 기적은 동독 독재자 에리히 호네커가 사라졌을 때 가능했다. 개발독재는 말 그대로 경제 개발을 위한 방편으로서의 독재를 의미한다. 이런 독재를 김 씨 왕조를 지키는 것이 최우선 목표일 수밖에 없는 김정은의 3대 세습 독재에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월북 작가 이태준의 일제 말기 단편소설에 패강냉()이 있다. 패강은 대동강의 옛 이름이니까 대동강이 얼다는 뜻이다. 소설은 평양을 배경으로 당시의 암울한 상황을 얼어붙은 대동강이라는 은유적인 제목으로 표현했다. 우수 경칩에는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말이 있다. 대동강은 결빙 기간이 길어 뒤늦게 물이 풀린다는 뜻이다. 분단 70년이 흘렀다. 대동강의 기적을 볼 수 있으려면 대동강 물이 먼저 풀려야 한다.

송 평 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