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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에 가려진 또 한명의 미디어아트 거장...고박현기 회고전 만다라

백남준에 가려진 또 한명의 미디어아트 거장...고박현기 회고전 만다라

Posted January. 27, 2015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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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오나라의 군략가 주유는 죽음을 맞아 하늘을 우러러 원망한다. 주유를 낳았거늘 어찌 다시 제갈량을 낳으셨습니까!

5월 25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는 회고전 만다라의 주인공 박현기(19422000)를 주유에 비한다면 제갈량은 백남준(19322006)이다. 같은 시대에 활동한 백남준만큼 화려한 명성은 얻지 못했지만, 박현기는 서구 미디어 기술에 동양 사상을 녹여내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 매진했다.

이번 전시는 유가족에게서 기증받은 작품과 자료 2만여 점을 2년에 걸쳐 정리해 처음 공개하는 아카이브전이다. 20대 학창 시절의 메모부터 전성기 대표작을 재현한 설치물, 작고할 무렵 남긴 아이디어 스케치까지 1000여 점을 선보인다. 박현기는 국내외 개인전과 광주비엔날레 참여로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던 중 위암 판정을 받고 갑작스럽게 숨을 거뒀다.

회고전 타이틀은 1997년 여름 미국 뉴욕에서 처음 공개된 영상 작품 제목에서 가져왔다. 만다라는 우주의 본질적 깨달음을 형상화한 원형 불화(). 둥그렇게 영사되는 화면 속에 형형색색 군상이 뒤얽혀 야릇한 움직임을 반복하면서 어지럽게 전환된다. 잠시 눈여겨보면 개별 영상이 포르노 이미지임을 알 수 있다. 만다라를 정립한 인도 대승불교의 한 갈래인 밀교()가 8세기 이후 성력()을 중시하는 탄트라로 이어짐에 착안한 작품이다.

작가가 부재한 전시다. 그래서인지 육성의 흔적은 작품보다 작업 노트에 또렷하다. 1990년대 전시 포스터 한가운데서 펴든 다섯 손가락 옆 낙서에 평소 매달린 상념이 빽빽이 적혀 있다. 사람 얼굴에는 오관(다섯 가지 감각기관)이 있고, 음()의 기본도 다섯 가지고, 사람의 기운에도 다섯 종류가 있고, 땅에는 5개 방위가 있고, 기본 색상도 다섯 가지다.

20대 때 전통문화 공부에 매진하며 영상 미디어로 이미지를 전하는 까닭을 먼저 찾으려 한 작가의 성향이 희미하게 엿보인다. 그러나 맥락 없이 툭툭 끊어진 전시 배치는 작가의 내면에 접근하지 못한 채 겉껍질을 맴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