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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아태국장 자리

Posted November. 29, 2013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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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26일 짧은 스포츠형 머리에 무표정한 얼굴로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한 휴버트 나이스 국제통화기금(IMF) 실무협의단장의 직책은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이었다. 한국이 국가부도 위기에 몰렸을 때 구제금융의 돈줄을 쥔 그는 우리에게 저승사자로 통했다.

이틀 뒤 서울 힐튼호텔 23층 펜트하우스에서 나이스 단장과 임창열 경제부총리 등 한국 정부 대표단이 만났다. 우리 대표단은 IMF가 구제금융 210억 달러를 지원하는 대가로 내놓은 고금리 고환율의 긴축 프로그램에 치를 떨었다. 나라 곳간에 돈이 바닥나면 어떤 굴욕을 당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한국은 IMF의 경제 식민지라는 자탄이 쏟아졌고 나이스는 저승사자 이외에 경제 총독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인도 등 40여 개 아시아태평양 국가를 담당하고 있는 IMF 아태국장 자리에는 나이스에 이어 호리구치 유스케(일본) 데이비드 버튼(영국) 아누프 싱(인도)이 차례로 임명됐다. 이창용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노미스트가 한국인으로는 처음 내년 2월부터 3년 동안 이 자리를 맡게 됐다는 소식이다. 외환위기 때와 비교하면 한국의 달라진 국가 위상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임명에는 미국 재무장관을 지낸 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의 추천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서머스 교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고, 이창용 씨의 하버드대 스승이기도 하다.

서머스 교수는 올해 10월 한국을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이 씨를 IMF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또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를 만날 때마다 그를 추천했다. 이 씨는 올리비에 블랑샤르 IMF 수석이코노미스트가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한 인연도 있다. 요직에 오르기 위해서는 우선 뛰어난 실력을 갖춰야 하지만 좋은 학교에서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은 국제사회에서도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최 영 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