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거짓말의 늪에 빠진 대화록

Posted October. 05, 2013 03:06   

中文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정일과의 정상회담 대화록을 왜 국가기록원으로 보내지 않았을까. 친노(친노무현)와 민주당 사람들은 그것을 노무현의 선의()로 포장한다. 후임 대통령들이 쉽게 보고 참고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는 것이다. 대화록을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해 국가기록원에 보내면 국가정보원이 갖고 있는 대화록도 같은 취급을 받아 관련법에 따라 후임 대통령들은 최소 15년, 최대 30년간 열람할 수가 없다. 그런 상황을 막아주기 위한 조치였다는 설명이다.

그럴싸하다. 그러나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이런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런 깊은 뜻이 있었다면 당연히 후임인 이명박 대통령 측에 그 사실을 알려줬어야 한다. 그래야 후임자가 마음 놓고 국정원의 대화록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 아닌가. 하지만 그 사실을 알려줬다는 사람도, 통고받았다는 사람도 없다. 문재인 의원을 비롯한 노무현 측 사람들은 거꾸로 대화록을 분명히 국가기록원에 보냈다고 말해왔다.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국정원의 대화록이 대통령기록물과 같은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말도 터무니없다. 국정원 대화록은 공공기록물관리법에 따라, 국가기록원의 대화록은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따라 관리된다. 적용되는 법이 엄연히 다른데 어떻게 같이 취급할 수 있는가. 같은 국정원에 있는 김대중-김정일 대화록은 2급 기밀인데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은 그보다 훨씬 열람과 공개가 까다로운 1급 기밀로 지정한 것도 노 전 대통령의 선의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더 억지스러운 주장도 있다. 노무현이 봉하마을로 가져갔던 복제 이지원(청와대 문서관리시스템)에 대화록이 존재하고 그것이 지금 국가기록원에 있으니 사초() 실종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봉하마을 이지원은 노무현이 무단 반출했다가 5개월 뒤 이명박 정부가 법 위반을 이유로 강력히 항의하자 실랑이 끝에 마지못해 반납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문제 제기가 없었더라면 지금도 봉하마을에 그대로 있을지 모른다. 봉하마을이 국가기록원이 아닐진대, 검찰 수사로 찾아내지 않았더라면 묻혀버릴 뻔했던 대화록을 어떻게 사초라고 우길 수 있나.

작년 10월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의 폭로로 노무현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의혹이 불거지자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은 정상회담에서 NLL 문제는 거론조차 안 됐다고 반박했다. 그는 NLL 관련 이야기가 나왔으면 배석했던 우리가 깜짝 놀랄 일인데 그냥 넘어갔겠느냐. 국민 앞에 명예를 걸고 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몇 달 뒤 국정원의 대화록이 공개되면서 그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다.

노무현의 NLL 발언 외에도 대화록의 내용은 한마디로 실망스러웠다. 그러자 친노와 민주당 사람들은 국정원 대화록의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고, 대조를 위해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을 원본 수색에 나섰으나 찾지 못하자 이번엔 이명박 정부의 폐기 가능성을 거론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 원본은 애당초 노무현 청와대에서 국가기록원으로 넘어가지도 않았고, 정작 원본을 폐기하고 수정본을 빼돌린 것은 노무현 측으로 드러났다.

대화록을 둘러싼 그들의 거짓말, 억지 주장, 말 바꾸기, 둘러대기 행진이 끝이 없다. 잘못이 드러나면 차라리 솔직히 시인하고 매를 맞는 편이 오히려 국민의 신뢰를 높여줄 텐데 정치를 왜 그렇게 하는지 답답하다. 혹시 국민을 바보로 아는 건가. 사람들을 잠시 속일 수 있고, 한 사람을 오래 속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모든 사람들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는 에이브러햄 링컨(미국 16대 대통령)의 경구도 모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