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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리기사의 운수 좋은 날

Posted April. 10, 2013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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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소문의 인력거꾼 김 첨지에게 오랜 만에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데도 80전을 벌어 모주까지 한잔 걸치고 달포 넘게 기침을 하는 아내에게 줄 설렁탕까지 사들고 돌아왔다. 아픈 아내는 설렁탕을 뺨이 불거지도록 허겁지겁 먹더니 그날 저녁 눈을 홉뜨고 숨을 거뒀다. 이슬 맺힌 아내의 눈을 보며 김 첨지의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1920년대 하루살이 인력거꾼을 소재로 한 현진건의 단편 운수 좋은 날의 줄거리다.

요즘으로 치면 대리운전 기사들이 김 첨지처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팍팍한 하루살이 인생이다. 운 좋게 대여섯 번 콜을 잡아 10만 원 정도를 벌어도 회사 수수료 20%, 보험료, 프로그램 사용료, 차비를 떼고 나면 6만 원도 손에 쥔다. 일부 악덕 업주는 각종 명목으로 수수료를 챙기는 기사 장사를 한다. 돌아올 길이 막막한 오지 콜이나 돈 안 되는 콜을 잡으면 하루를 공치기 십상이다. 운 나쁘면 술에 취해 주먹을 휘두르고 여성 기사를 접대부로 착각하는 손(손님에서 님을 빼고 부르는 기사들의 은어)을 만난다.

최근 대리운전 기사 임모 씨(47)가 배우 이지아 씨를 태우고 국내에 100여대만 수입된 억대 마세라티 차량을 운전하고 가다가 순찰차를 들이 받았다. 그가 보험에 가입했다고는 하나 보험 한도는 3000만 원이다. 이 돈을 넘는 수리비는 대리기사가 물어 줘야한다. 외제차라고 돈을 더 받는 건 아닌데, 위험 부담은 훨씬 크다. 임 씨는 쿵 하는 순간 가족들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1990년대 등장한 신종 도시 서비스업인 대리운전은 음주 교통사고를 막고 외환위기 이후 서민 일자리를 만들어낸 순기능이 있다. 전국대리기사협회는 전국에 15만20만 명의 대리운전 기사가 있고 하루 밤에 50만60만 명이 대리운전을 이용한다고 추정한다. 하지만 아직 관련 법률이나 표준 요금도 없다. 기사의 권익과 소비자 안전을 위해서라도 법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늘 밤도 수십만의 대리운전 기사들이 운수 좋은 날을 바라며 거리를 누빈다.

박 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