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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가도로의 퇴장

Posted March. 16, 2013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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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베스트셀러 소설 1Q84의 첫 장면은 꽉 막힌 고가차도에서 시작한다. 살인청부업자인 여주인공 아오마메는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자를 죽이러 가는 길에 택시를 탔다가 오도 가도 못한 채 고가도로에 갇혀버린다. 초조해하는 여자에게 택시 운전사는 지상()으로 통하는 출입구를 일러준다. 비상계단을 따라 내려와 보니 아오마메의 눈앞엔 방금 전과 사뭇 다른, 낯선 시공간()의 세계가 펼쳐진다.

소설에 나오는 산겐자야의 고가차도 말고도 도쿄에서는 어디서나 공중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만나게 된다. 초고층 빌딩 숲을 배경으로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이 떠받친 길 위에 차들이 무섭게 내닫는 풍경은 얼핏 SF영화 속 미래도시를 떠올리게 한다. 일본의 경우 1964년 도쿄 올림픽을 대비해 자동차의 빠른 소통을 위해 고가도로를 많이 건설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1960년대 말부터 서울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고가도로가 들어섰으나 청계천 복원사업으로 2006년 청계고가도로가 철거된 뒤 하나둘 퇴장하는 추세다. 예전에는 차들의 원활한 통행이 최우선이었다면 이제는 조망권과 도시미관 같은 삶의 질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제 서울시가 국내 최초의 고가도로인 아현고가도로를 철거하겠다고 발표했다. 1968년 9월 19일 준공한 이 고가도로는 왕복 4차로에 총길이 989m나 된다. 철거 사유는 구조물이 나이가 들면서 붕괴 위험이 있는 데다 보수비용만 80억 원이 들기 때문. 서울시는 자동차 위주에서 사람 중심의 정책을 표방하며 2002년 동대문구 전농동 떡전고가차도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15개의 고가도로를 철거했다. 내년 6월에 아현고가도로가 사라지면 서울에는 84개가 남는다.

고가도로 밑 방치된 공터가 불법주차장이나 자재하치장으로 쓰이면서 주변 주민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음습한 공간이 지역 발전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서울 서대문구 홍제고가차도를 철거한 뒤 구청이 구정만족도를 조사해 보니 36.6%가 고가차도 철거가 가장 만족한 사업이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낯익은 풍경이 사라지는 것에 섭섭함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다. 미국에서 1년 만에 귀국한 한 작가는 고가차도가 없어진 혜화동 로터리를 볼 때마다 젊은 시절의 추억 한 조각을 잃은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빠르게 다가왔던 산업화의 유산들이 그 속도보다 더 빠르게 사라지는 모습은 새삼 한 시대를 돌아보게 한다.

고 미 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