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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인터넷 글, 실명강제 없어도 책임은 못 피한다

[사설] 인터넷 글, 실명강제 없어도 책임은 못 피한다

Posted August. 24, 2012 07:08   

헌법재판소가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 재판관 8명의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법률로 제한할 수 있지만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공익의 효과가 명확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인터넷 실명제는 공익보다는 부작용이 더 많다는 것을 위헌 이유로 들었다.

2007년 7월 노무현 정부가 도입한 인터넷 실명제는 인터넷에 글이나 동영상을 올리기 전 본인 여부를 확인하지만 다른 이용자들은 실명을 볼 수 없는 낮은 단계의 실명제다. 본인 확인만 거치면 가명으로도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정확히는 제한적 본인 확인제라고 하는 것이 맞다. 익명의 언어폭력이 판치는 사이버 공간에서 최소한의 피해자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도입됐다.

그러나 네이버 다음 등 한국 사이트가 구글 등 외국 사이트에 역()차별을 당해 토종 사이트의 이용자들이 실명제가 적용되지 않은 해외사이트로 도피하는 일이 벌어졌다. 주민등록번호가 없어 본인 인증을 할 수 없는 외국인들은 한국 사이트에 게시물을 올리기가 불가능했다. 본인 인증을 위해 사이트에 제공한 개인 정보가 대량으로 누출돼 이용자들이 피해를 보는 사건도 잇따랐다. 정부는 주민등록번호 인증 대신 아이핀 인증 등으로 대체하는 제도를 최근 도입했지만 무용지물()이 됐다.

이러한 부작용을 이유로 헌재는 인터넷을 실명제 도입 이전의 익명의 세계로 돌려보냈다. 우리 사회에서 인터넷을 이용해 익명으로 인격살인에 해당할 정도의 댓글을 달고 허위사실을 퍼뜨려 개인과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행위가 여전해 이번 헌재 결정이 걱정스럽다. 다만 누리꾼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실명제가 없어진다고 해서 인터넷의 익명 불법 게시물이 책임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명예훼손이나 모욕, 흑색선전은 사이버상이든 아니든 형사처벌의 대상이다. 검경의 사이버 수사능력이 5년 전에 비하면 크게 개선돼 익명의 글이라도 대부분 인터넷 주소(IP)로 추적할 수 있다.

헌재가 낮은 단계의 실명제에 대해서조차 위헌 결정을 내림에 따라 인터넷의 익명성을 제한하려는 조치는 불가능해졌다. 개인은 그래도 어느 정도 보호를 받을 수 있겠지만 국가나 사회를 향한 근거 없는 비판은 미네르바 사건의 무죄 판결에서 보듯이 처벌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인터넷의 익명성을 보장하면서 어떻게 공론() 형성 과정의 왜곡을 막을 수 있을지 우리 사회에 주어진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