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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수국가의 그늘

Posted September. 13, 2010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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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신문이나 방송에는 최근 무연()사회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지방자치단체에 주민등록은 돼 있지만 이미 사망했거나 소재가 묘연한 노인이 잇따라 드러나면서 생긴 조어다. 고령자에게 나오는 노인연금을 계속 받기 위해 가족이 사망이나 행방불명을 은폐한 사례가 많아 충격이 더 크다. 연금급부 같은 행정사무의 기초가 되는 주민기본대장에 등록된 100세 이상의 행방불명자는 벌써 300명을 넘었다. 호적에는 남아있지만 주소지가 파악되지 않는 100세 이상은 23만 여명에 이른다.

일본은 평균수명이 86세를 넘고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23% 안팎인 세계 1위의 장수() 국가다. 급속히 진행되는 고령화의 흐름 속에서 가족이나 사회의 유대(), 인연, 정() 등을 의미하는 기즈나()의 붕괴가 무연사회를 가속화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자녀의 경제능력이 취약한 가정에서 부모의 노인연금을 노려 차마 하지 못할 일을 저지른 사례도 속속 드러났다. 장수 국가의 그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한국에서 일본에서 벌어지는 사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2000년 65세 이상 노인비율이 7% 이상인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 2018년에는 이 비율이 14% 이상인 고령사회, 2026년에는 20% 이상인 초고령 사회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1970년 한국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3.1%로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인도네시아와 함께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올해 11.0%로 높아진데 이어 2030년에는 24.3%로 일본 독일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4위의 늙은 국가가 될 것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예측한다.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은 2002년 마드리드 노인선언을 발표하면서 급속한 고령화는 지구촌의 시한폭탄이라고 우려했다. 수명의 연장이 꼭 축복만은 아니다. 개인적 고통과 국가경쟁력 저하를 불러올 수도 있다. 오랫동안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하는 정책적 배려와 각 개인의 근로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산업화 과정에서 간과됐던 가족과 이웃간의 따뜻한 정을 되살리는 일도 중요하다.

권 순 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