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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 나홀로 약세 끓는 물가에 기름

Posted March. 12, 2008 08:10   

물가가 치솟는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원화가치 하락세(환율은 상승)가 가파르게 이어지고 있다.

물가 상승과 환율 상승은 둘 다 돈 가치가 떨어진다는 점에서 방향이 같다. 따라서 환율 상승은 물가 상승세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한다. 특히 최근의 물가 상승세는 식료품 등 생필품 값을 끌어올리면서 저소득층에 더욱 큰 고통을 주고 있다. 하지만 정책 당국은 환율 상승이 수출을 자극해 경상수지 개선에 도움이 되므로 물가관리를 위한 환율안정 정책은 쓰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물가와 경상수지 및 경제성장이라는 상반된 정책목표 중 경상수지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하지만 이를 거칠게 요약하면 서민이 힘들더라도 수출기업부터 살리겠다는 뜻이 된다.

8거래일만에 33.50원 급등

1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달러당 4.70원 급등한 97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날 장중 980.6원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지난달 28일 936.50원 이후 8거래일간 33.50원 급등하면서 2006년 4월 3일 970.80원 이후 23개월 만에 처음으로 970원대로 상승했다.

올해 1월 2일부터 10일까지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는 3.41%나 떨어졌다. 같은 기간 일본 엔화는 9.97%, 유로화는 5.06% 급등했다.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 다른 나라 통화들도 대부분 가치가 올랐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확산과 경기침체, 미국의 금리 인하 때문에 달러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다른 나라의 통화 가치는 오르고 있는데도 유독 원화 값은 떨어지는 이상현상이 계속되는 것.

원화의 나홀로 약세는 달러가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우선 고유가의 영향이 크다. 또 외국인 투자자들이 자국내 투자자의 환매 요구에 대비해 그동안 수익이 높았던 한국시장에서 주식을 팔아 달러로 바꾸고 있어 달러 수요가 더욱 늘고 있다. 외국인들은 올해 들어 10일까지 12조2076억 원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다른 통화에 비해 원화 가치 상승 폭이 너무 컸던 데 따른 조정 현상이라는 시각도 있다. 2002년 1월부터 작년 10월 말까지 엔화가 14.5%, 대만달러가 8% 오르는 동안 원화는 45% 정도 가치가 올랐다.

최소한 외국인들이 주식배당금을 달러로 바꿔 송금하는 4월까지는 달러 수요 증가로 환율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코스피 상장기업들이 외국인에게 지급하는 배당금 총액은 4조9398억 원에 이른다.

물가 보다 경상수지 개선 선택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수출경쟁력이 높아지고 수입 사치품 소비가 줄면서 경상수지는 개선된다. 정책당국은 물가와 경상수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 셈이다. 최근 기획재정부 간부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강만수 장관은 경상수지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경상수지 적자는 국부()를 고갈시키는 행위이므로 최대한 적자폭을 줄여야 한다는 게 강 장관의 소신이라는 것.

재정부 관계자는 강 장관이 재정경제원 차관을 지낼 당시 정부가 국민소득 1만 달러 달성을 위해 원화 강세 정책을 유지했다가 경상수지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외환위기를 맞았던 쓰라린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더구나 올해 70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이므로 환율을 통한 물가안정 여지는 더욱 줄어들었다.

재정부 고위 당국자는 강 장관을 포함해 환율정책 라인의 공통된 생각은 물가를 위해 환율시장에 개입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최근의 물가 상승은 서민 생활과 직결된 밀가루가공식품 등의 가격을 끌어올려 저소득층에 더 큰 부담을 주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이광우 선임연구원은 환율이 물가에 큰 충격을 주는 현상이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환율 정책에 변화를 줘야 할지 여부에 대한 정책당국의 고민은 그만큼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