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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무릎꿇지 않는거야, 혜진아!

Posted March. 15, 2007 07:04   

나와 주었구나. 고맙다. 아저씨.

13일 오후 2시 경기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수원시청 앞.

당일 목표지점을 향해 다가가는 장애인 마라토너 박종암(55호주 교포) 씨의 볼에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함께 테이프를 붙잡고 박 씨를 맞은 나혜진(23경기 부천시) 씨의 눈시울도 점점 붉어졌다.

박 씨는 2000년 호주의 정유회사에서 일하다 산업재해로 오른쪽 발가락을 모두 잃는 장애를 입었지만 걷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료진의 예상을 깨고 마라톤을 다시 시작했고, 18일 서울에서 열리는 2007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78회 동아마라톤대회 참석에 앞서 장애인 돕기 기금 마련을 위해 1일부터 15일까지 부산서울을 종주하고 있다.

혜진 씨와 박 씨의 만남은 동아일보 10일자 박 씨의 대전 경유 기사가 계기가 됐다.

혜진 씨의 아버지인 나정철(59) 씨는 이날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박 씨의 연락처를 물었다.

딸(혜진)이 2004년 충남 천안에 있는 대학으로 통학하기 위해 열차를 탔다가 사고를 당해 박 씨와 비슷한 장애를 입었어요. 그 충격으로 학교도 그만뒀고 아무도 만나려 하지 않으니.

나 씨는 박 씨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한 뒤 딸을 한 번만이라도 꼭 만나봐 달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박 씨는 수원시청 앞 골인지점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혜진 씨는 절대 나가지 않겠다고 버텨 만남은 무산되는 듯했다. 나 씨도 아내와 아들이 대신 약속장소로 갈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약속시간이 다가오자 혜진 씨가 마음의 문을 열었다. 박 씨가 골인지점에서 갑자기 눈물을 쏟아낸 것은 예상치 않았던 혜진 씨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박 씨는 자신의 장애 부위를 보여주며 혜진 씨에게 절대로 꿈과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했다. 나 씨의 초청에 기꺼이 응해 집까지 찾아가 같이 식사도 하고 밤늦게까지 자신의 장애 극복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혜진 씨는 14일 한층 밝아진 모습으로 친구들과 전화를 했고 어머니를 따라 미장원에 가기도 했다.

박 씨는 13일 동안 뛰면서 여러 만남이 있었지만 혜진이와의 만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호주에서 날아온 것은 아마도 이번 만남을 위해서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나 씨는 혜진이가 다른 사람과 말을 한 것이나 식구들이 얼굴을 활짝 펴고 웃어본 것 모두 악몽 같았던 사고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며 박 씨는 장애 입은 몸으로 달리기를 하면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주고 있다고 말했다.



지명훈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