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대학을 졸업한 양모(28) 씨는 현재 H그룹 전산관리 담당자다. 그는 졸업 후 소규모 벤처기업에 입사했다. 대기업 입사에 몇 차례 실패한 적이 있는 그는 관심 직종에서 경력을 쌓아 대기업으로 이직했다.
양 씨는 대기업만을 고집해 백수 생활을 하기보다 중소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더 낫다면서 대기업에서 벤처기업의 경력을 모두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양 씨처럼 4년제 대학 졸업자 중 졸업 후 실업자로 지내다가 곧바로 대기업에 취직하는 사람보다 중소기업을 거쳐 대기업에 입사하는 사례가 많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6일 주최한 인적자원개발(HRD)포럼-기업 규모와 청년층 노동 이동에서는 2001년 2월 졸업한 4년제 대졸자 가운데 5만8576명의 직업 이동을 추적한 결과가 발표됐다. 이 조사는 청년층의 기업 규모 간 이동 실태를 밝힌 국내 첫 시도다.
이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300명 미만)에서 첫 직장을 잡아 2년 이상 근무한 대졸자가 대기업에 입사한 비율은 2004년 3월 현재 35.9%로 졸업 이후 실업자로 지내다 대기업에 입사한 대졸자의 비율(32.1%)보다 높았다.
또 중소기업 경력이 있으면 취업 기간 1년을 기준으로 미취업 상태에서 취직한 사람보다 임금을 510% 더 받으며 취업 횟수는 대기업 취업에 별 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졸자들이 낙인(scar) 효과를 우려해 중소기업 취업을 기피하기보다 중소기업에 취업한 뒤 이직을 준비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임을 입증하는 것.
5만8576명 가운데 조사 기간에 첫 직장을 잡은 2만8937명 중 8437명(29.2%)이 대기업에, 2만500명(70.8%)이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또 첫 직장에서 2년 이내에 회사를 떠난 사람은 대기업 취업자의 경우 10명 가운데 5명꼴인 50.8%, 중소기업 취업자의 경우 10명 가운데 8명꼴인 81%였다. 통틀어 10명 가운데 7명이 첫 직장을 떠난 셈. 이직자들은 직장을 옮기거나 고시 준비, 유학 등을 위해 회사를 그만둔 파랑새족이다.
이들의 이동으로 한국 사회에 본격적인 청년층 중심의 잡 마켓(Job Market노동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다.
대기업 이직자 가운데 37.8%가 중소기업으로 이동했거나 미취업 상태이며 중소기업 이직자 가운데는 36.9%가 미취업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 이직자 가운데 8.8%가 대기업에 취직했다.
LG경제연구원 강승훈() 선임연구원은 청년층 중심의 노동시장은 앞으로 급속도로 확산될 것이라며 기업이 인재 확보뿐만 아니라 유지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시점이 왔다고 말했다.
정세진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