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12월 초부터 마라톤 세일을 벌이는 의류 매장은 손님으로 붐비는 듯했다. 하지만 한 판매직원은 전례 없이 3050% 세일을 하는데도 10명 중 한두 명만 물건을 산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지갑을 닫았다. 크리스마스, 연말연시로 흥청망청할 듯한 12월이지만 소비심리는 꽁꽁 얼어붙고 있다. 상인들은 외환위기 이후 가장 경기가 나쁘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며 한숨이다.
대형 매장의 썰렁한 연말롯데백화점은 1일부터 25일까지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7.5% 줄었다.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현대 신세계 등 다른 백화점도 마찬가지다. 신세계 장혜진 과장은 크리스마스 대목인 24, 25일 이틀 동안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7% 정도 줄었다고 말했다.
전년 동기 대비 늘 10% 이상 성장해 온 할인점도 이달 들어 울상이다. 사상 최초로 19%의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고 그 추세가 내년에도 계속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김영웅 가전담당 바이어는 그동안 잘 나가던 PDP TV, 김치냉장고 등 가전의 소비도 조금씩 줄고 있다면서 카드 손님이 크게 줄었고 6개월 무이자 할부를 해도 지갑을 열지 않는다고 한숨을 쉬었다.
소비 위축에도 아랑곳없다던 명품도 흔들리고 있다. 프라다 등 노세일(No Sale) 수입명품 업체들도 이달부터 2030% 세일에 나섰지만 벌이는 신통치 않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10월까지 성장세를 보이던 명품매장 매출액이 11월 들어 -4%, 12월 -10%로 추락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서민들, 장사 안돼 못 살겠다재래시장, 전자상가, 서울시내 주요 상가는 된서리를 맞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입구의 L미용실 한모 실장은 손님이 절반 수준인데다 파마나 염색보다 가격이 싼 커트를 하는 이가 대부분이라며 외환위기 때처럼 생머리가 유행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주차장사업소 한기홍 부장은 12월 한 달 동안 지난해에 비해 주차 대수가 1만5000대 줄었다며 1주일에 1번꼴로 들르던 지방 상인들이 보름이나 한 달에 1번 정도밖에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대문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진성훈 사장은 전업을 고려하고 있다면서 장사꾼의 의례적 투정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말했다.
연말 소비급감은 텅 빈 주점에서도 엿볼 수 있다. 주류도매업체 임성상사의 임석준 사장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전후 사흘 동안 신촌 등지에 양주 500상자를 공급했지만 올해는 400상자도 팔지 못했다며 서민들이 즐겨 찾는 생맥주는 40%, 소주는 10% 정도 매출이 줄었다고 말했다. 27년 동안 서울에서 개인택시를 몬 박병선씨(50)는 못 벌어도 시간당 1만원 꼴은 벌었으나 요새는 60008000원 수준이라며 동료들도 빈차로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소비 추락의 원인과 파장북한 핵과 이라크 전쟁 위험 등 대외 불안요소, 가계대출 및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에 제동을 건 정부 정책 등이 소비심리를 짓누르기 때문.
한국은행 정책총괄팀 허진호 차장은 해외 악재로 인한 주가하락과 정부의 가계신용 축소정책 등이 소비 둔화를 가속화했다면서 내년 상반기까지는 이런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올 34분기(79월) 국내총생산 증가율 5.8% 중에 소비가 무려 3.4%포인트를 기여하는 등 소비가 우리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소비위축은 경기 둔화의 폭을 더 깊게 할 것이라는 우려가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LG투자증권 박진 애널리스트 역시 국내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해외 경기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만큼 내수 부양을 해서라도 경기가 더 하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면서 부양이라기보다 견디기라는 표현이 더 나을 듯하다고 말했다.
한 국책기관의 전문가는 최근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 정책이 너무 규제 위주여서 신용경색의 우려가 있다면서 소비가 급속히 위축되지 않도록 완급을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동안 비정상적으로 소비가 경제를 이끌어 온 만큼 소비 둔화는 당연한 현상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금융연구원 거시경제팀 신용상 연구위원은 경제를 이끄는 세 축인 소비와 투자, 수출에서 수출이 살아나고 있다면서 내년 해외경제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인다면 소비 감소로 인한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최근 삼성그룹과 LG그룹이 내년도 설비투자를 늘리기로 하는 등 지지부진하던 투자에도 새로운 기운이 엿보이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로 꼽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