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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제국’의 추락

Posted January. 03, 2017 07:29   

Updated January. 03, 2017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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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화여대 류철균 교수가 비선 실세의 딸 정유라 씨에게 학점 특혜를 줬다가 2일 구속됐다. 류 교수는 이인화(二人化)라는 소설가 필명으로 더 유명하다. 1992년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로 등단한 그는 이듬해 정조의 독살설을 모티브로 한 ‘영원한 제국’으로 밀리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그의 등단 작품은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함께 1980년대 암울한 시대를 겪었던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공감과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작가적 자질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다. 등단작품부터 공지영과 무라카미 하루키 등 국내외 작가들을 표절한 작품이라는 비평가들의 혹평에 시달렸다. ‘영원한 제국’ 역시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작품을 표절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표절시비가 일자 그는 필명과 실명을 번갈아 쓰며 ‘셀프 방어 평론’을 하다가 평론가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가 최순실 씨 일가와 언제부터 인연을 맺었는지는 명확치 않다. 하지만 1997년 출간한 3부작 소설 ‘인간의 길’에서 그 단초가 엿보인다. 그는 소설 속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대의 영웅’으로 대놓고 미화했다. 2014년엔 최 씨의 측근 차은택 씨와 대통령 산하 문화융성위원회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2015년 10월엔 박근혜 대통령의 제안으로 출범한 청년희망재단 초대이사도 맡았다. 이 재단은 미르·K스포츠재단과 같이 대기업들로부터 단기간에 수백억 원을 거둬 강제모금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인간에게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소설처럼 천사와 악마의 이중인격이 조금씩은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학점 특혜가 문제가 될 조짐을 보이자 조교에게 답안지까지 대리 작성하게 해 자신의 범죄를 감추려 한 것은 스승으로서 도저히 용서하기 어렵다고 교수들은 입을 모은다. 권력에 유착하는 순간 자유로운 작가 정신은 사라진다. 특히 소설가나 학자는 ‘양심의 가책 없는 영혼’을 먹고 살아야 한다. 대중의 인기를 얻거나 사회적 존경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종대 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