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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열심히 일해서 갚을게”… 이 말을 못 믿는 이유

입력 | 2026-05-03 08:10:00

[돈의 심리] 지금까지 열심히 살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가망 없어




지인에게 금전적 도움을 주는 것은 단순히 친분 관계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GETTYIMAGES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하나 생겼다. 지인 중 한 명이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몇백만 원 정도가 아닌 큰돈이다.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사람은 꽤 있으니 그 자체가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이 지인은 오랫동안 알아온 사이다. 이 문제로 서로 관계가 어색해지는 걸 나도 바라지 않는다. 지인과의 관계를 고려하면 빌려줘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돈 거래는 친한 사이냐, 아니냐만으로 정할 일이 아니다. 그 외 다른 요소들이 더 중요하다.

인도 여행과 명상 서적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류시화의 에세이집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에는 이런 에피소드가 나온다.

“학교 졸업 후 결혼을 했지만 직장도 없이 북한산 밑에서 셋방살이를 할 때였다. 꼭 인도를 가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자기를 잘 알아주는 20여 명 지인들에게 인도에 갈 여행 경비를 도와주면 돌아와 열심히 일해서 꼭 갚겠다고 손편지를 써서 부탁했다. 하지만 여비에 보태라고 돈을 빌려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류시화도 거절당한 부탁
류시화는 마음을 울리는 문장으로 유명하다. 그가 손편지로 간절하게 부탁했으니 충분히 그 마음이 전달됐을 것이다. 하지만 주위 사람 아무도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물론 돈이 없어서 돈을 빌려주지 못한 사람도 있을 테다. 그러나 아무리 여윳돈이 있는 사람이라도 이런 경우라면 돈을 빌려주기 어렵다. 나도 이런 부탁을 받는다면 생각할 것 없이 무시해버렸을 테다. 그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첫째, 돈을 빌리는 시기의 문제다. 돈을 빌리는 사람은 보통 열심히 일해서 나중에 꼭 갚겠다고 한다. 류시화도 그랬다. 그런데 왜 지금 돈을 빌리고, 나중에 열심히 일해서 갚으려고 하나. 그냥 지금 열심히 일해서 그 돈을 벌면 되는 거 아닌가. 열심히 일하는 걸 왜 돈을 빌린 다음에야 하나. 돈을 빌리기 전에 미리 열심히 일해 돈을 벌 수 있지 않나. 

물론 꼭 지금 돈이 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수술비가 필요한 경우에는 당장 돈이 필요하다. 학생의 경우 계속 공부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그때는 “지금 돈을 빌리고 나중에 열심히 돈을 벌어서”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꼭 지금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 먼저 돈을 벌고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이다. 류시화의 경우도 당장 인도에 가고 나중에 돈을 벌기보다 돈을 먼저 번 다음에 인도를 가도 되는 일이었다. 본인은 돈을 빌려서라도 지금 당장 하고 싶겠지만,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면 몇 년 늦는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누구나 생각해도 정말 필요한 돈인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던 학생이 의지만으로 공부를 잘하기란 쉽지 않다. GETTYIMAGES

둘째, ‘열심히’라는 말을 믿을 수 있느냐다. 사람들은 나중에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참 쉽게 한다.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그런데 열심히 산다는 건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지 않은 사람이 어느 날부터 갑자기 열심히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공부하지 않던 학생이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해 성적을 올리겠다고 결심한다고 해보자. 그 각오 자체는 진심일 것이다. 그러면 그때부터 이 학생은 정말로 열심히 공부할 수 있을까. 하루 10시간 넘게 책상에 앉아 공부한다는 건 그동안 계속해서 그렇게 해온 사람이나 가능하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학생은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며칠은 해볼 수 있겠지만 몇 주, 몇 달씩 지속하는 건 정말 어렵다. 이제부터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결심하는 학생은 많지만 실제로 성적이 오르는 경우는 드문 이유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 당장 돈이 필요하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돈을 갚겠다고 하는 것 다른 문제다. 하지만 그동안 열심히 살지 않은 사람의 말은 신뢰하기 어렵다. 친한 사이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 사람이 정말로 열심히 살아온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 그런 신뢰가 있다면 그리 친하지 않고, 서로 안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이라도 돈을 빌려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돈을 빌리려는 목적과 절실함이다. 돈을 빌리려는 사람이 아무리 절박하다고 해도, 빌려주는 사람 입장에서 절박해 보이지 않으면 빌려줄 수 없다. 매일 고기를 먹던 사람이 돈이 떨어져 채소만 먹게 되면 본인 입장에서는 굉장히 큰일이다. 고기를 계속 먹으려고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하지만 빌려주는 입장에서 이건 빌려줄 만한 상황이 아니다. 지금은 채소를 먹고, 나중에 돈을 벌어 고기를 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평생 고기만 먹어 와서 고기를 먹지 않으면 정말 힘들다고 아무리 호소해도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공감이 가지 않는다.

이때는 돈을 빌려주는 사람의 가치관이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만약 돈을 빌려주는 사람도 평생 고기만 먹고 살아서 고기가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는 경우라면 이런 이유를 충분히 이해해 돈을 빌려줄 것이다. 제때 공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학비가 필요하다는 말에 쉽게 지갑을 열 수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거부였던 윤치호는 주변에 돈을 빌려달라는 사람이 차고 넘쳤다. 윤치호는 그 요구를 대부분 거절했지만,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교육 사업과 선교 사업에 대해서는 달랐다. 어느 부분에 돈을 빌려주느냐는 그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가치의 척도가 된다.    

긍정적으로 작용하길 바랄 뿐

류시화의 에세이집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에는 작가가 인도 여행 경비를 지인들에게 빌리려고 했던 대목이 나온다. 수오서재 제공

류시화는 인도 여행을 하기 위해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본인은 굉장히 절실했겠지만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젊어서 인도 여행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명상을 위해 인도에 반드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돈을 빌려줄 수 있다. 그러나 대개는 인도 여행을 가기 위해 돈을 빌려달라는 말에 공감하기 힘들다. 자신도 인도를 가보지 못했는데 인도 여행을 하겠다고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당연히 거절할 것이다.

류시화는 인도 여행비를 빌리지 못했고, 그때부터 열심히 일하기 시작했다. 번역 일을 시작해 밤샘 작업을 밥 먹듯 하면서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결국 경비를 모아 인도로 향했다. 인도 명상 여행가이자 작가 류시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만약 류시화가 그때 빌린 돈으로 인도를 갔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류시화는 없을 것이다.

나도 지인에게 돈을 빌려주지 못한다. 관계만 보면 돈을 빌려줘야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럴 만한 일이 아니다. 나중에 돈을 벌어서 갚겠다고 하는데 지금부터 돈을 벌어서 해도 되는 일 같다. 빌리려는 돈의 용도도 문제다. 미래를 준비하려는 돈도 아니고 소비를 위한 돈이다. 먹고살려는 소비도 아니고, 체면을 살리기 위한 소비다. 본인 입장에서는 정말로 중요한 일일 수 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급한 일이 아니다. 

나도 굉장히 찝찝하다. 하지만 류시화가 돈을 빌리려다가 실패한 후 번역가이자 작가로 다시 태어난 것처럼, 이 일이 지인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의 결정이 나중에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537호에 실렸습니다》


최성락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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