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 창작자들은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베스트셀러가 되길 꿈꾸지만,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 희귀한 확률을 뚫고 베스트셀러가 된 콘텐츠가 탄생한 과정을 들여다본다. 창작자의 노하우를 비롯해 이 시대 사람들의 욕망, 사회 트렌드 등을 확인할 수 있다.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1997년. 남자아이 여섯 명을 죽인 한바로는 사형 직전 한 아이가 보고 싶다고 말한다. 죽이지 못한 일곱 번째 아이. 그가 실패한 유일한 사건이자 그가 잡히게 만든 사건. 그를 잡은 건 남자아이의 누나였다. 열 세살 소녀 오광심은 동생을 납치한 한바로의 아킬레스건을 끊어버리고 칼로 목을 겨눴다.
광심은 형사가 된다. 광심의 눈에 깃든 살기(殺氣)를 본 아버지가 딸에게 경찰이 되길 권한 것. 광심은 수사 과정에서 마주한 사이코패스들을 단박에 알아본다. 그들 역시 광심이 같은 부류임을 알아챈다. 한바로 역시 그랬다. 어느 날 정치권에서 영입 제안 0순위로 꼽히는 유명 인문학자 고보경의 대학생 딸 고영혜가 실종된다. 광심은 베스트셀러 추리소설가 주해환과 함께 영혜를 찾아나서는데….
이동원 작가(48)가 쓴 장편소설 ‘얼굴들’(라곰)이다. 이 책은 지난해 11월 출간된 후 7개월 간 밀리의 서재에서 3만 명 넘게 읽었고 단행본은 5000권이 판매됐다.(국내 출판계의 베스트셀러 기준은 책 판매량 1만 권이다.) 밀리의 서재에서 지난달에 이어 이달에도 종합 1위에 올랐다. 영상화를 위한 판권 계약도 했다. 독자들은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예상하지 못한 반전에 끝까지 손에서 책을 놓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광고 로드중
장편소설 ‘얼굴들’을 쓴 이동원 작가.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얼굴들’은 2020년 다른 출판사에서 낸 ‘적의 연작 살인사건’을 새롭게 출간한 작품이다. ‘적의 연작…’은 주목받지 못했고 이를 아쉬워한 이 작가가 최 대표에게 책을 건넸다. 최 대표와의 인연은 제5회 추미스(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공모전에서 ‘천국에서 온 탐정’으로 우수상을 받은 게 계기가 됐다. 이 작품을 라곰에서 책으로 내게 됐기 때문이다. ‘적의 연작…’을 본 최 대표는 “첫 장면부터 사로잡혔다. 꼭 널리 알리고 싶다”며 해당 출판사와 계약이 끝나면 개정판을 내겠다고 약속했다. 책의 일부 내용은 덜어내 속도감을 높였다.
이 작가는 ‘얼굴들’을 쓰기 위해 사건의 주요 배경이 되는 재개발 지역을 수차례 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형사인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광심의 고향 완도와 그 주변을 묘사하기 위해 완도 출신 친구에게도 도움을 받았다. 사형집행관 업무를 비롯해 국내외 범죄 관련 자료도 찾았다. 이 작가는 “현실감이 있어야 몰입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얼굴들’ 책표지. 라곰 제공
“악은 타고 나는 것도 있지만 악이 발현되는 데는 환경적인 요인도 있다고 봅니다. 학대받으면서 괴물이 돼 가는 거죠. 하지만 악의 씨앗을 갖고 태어나도 싹이 트지 않게 애쓰면 제어 가능하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광고 로드중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 연쇄 살인범 남기태(오른쪽·김중희)는 살인 충동을 억누르지 못한다. SBS 제공
서가에 책을 꽂아뒀다 우연히 보게 된 장 교수는 “첫 장부터 흡인력이 강하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사건들이 긴장감을 유지하며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사회적 메시지도 담았다. 만족스럽게 읽었다”며 추천하는 영상을 올렸다. 다만 여러 인물이 등장하다보니 각 인물별 결말이 여러 차례 나오거나 상투적인 묘사가 있는 점은 아쉬웠다고 했다.
이 작가는 “정통한 분에게 인정받아서 정말 기뻤다. 교수님이 싸이월드에서 ‘화요추리클럽’ 클럽장을 하실 때 멤버였다”고 했다.
“스릴러나 추리소설은 미스터리를 풀어가며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는 게 매력적이에요. 사회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고요. 범인이 누구인지보다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중점을 두고 씁니다.”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 구영춘(한준우)은 호감을 주는 외모로 사람들에게 접근해 살인을 저지른다. SBS 제공
광고 로드중
“제작사 관계자들에게 ‘돈 냄새가 안 난다’는 지적을 받으며 시나리오를 거듭 수정하다 지쳤어요. 그러다 소설을 써보자고 생각했죠. 아무 제약 없이 자유롭게 쓰니까 정말 재밌더라고요.”
그는 작가로서 좋은 경력을 쌓아왔다. 여러 상을 받으며 꾸준히 소설을 출간했고, ‘살고 싶다’는 영상화를 위한 판권도 판매됐다. ‘천국에서 온 탐정’은 곧 출간될 예정이고 판권이 러시아와 태국에 판매됐다. 하지만 크게 주목받은 화제작은 아직 없다.
“소설가로 데뷔한 후 ‘불행한 시대에 작가가 됐다’는 말을 들었어요. 전업 작가로 살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었죠. 각오는 했지만 마음만큼 성과가 나지 않는 경우를 여러 번 겪었습니다. 많이 애쓴 작품일수록, 읽어본 사람들이 좋다고 말할수록 더 괴로웠어요. 부모님은 작가가 되는 걸 엄청 반대하셨지만 저는 ‘자신 있다’라고 설득했거든요. 그런데 기대했던 마음이 깎여나가면서 좋은 날이 오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글을 쓸 때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고 했다.
“아버지는 작가가 되면 고생할 걸 알기에 강하게 반대하셨지만 결국 노트북을 사주셨어요. 허락의 의미였죠. 암 투병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서 지하철에서 출간 제안 전화를 받았어요. ‘수다쟁이 조가 말했다’였습니다. 아버지가 첫 책을 못 보고 돌아가신 게 마음 아픕니다.”
글쓰기를 계속 해야 할지 고민한 적도 있다. 방황 끝에 글쓰기가 진짜 즐겁다는 걸 깨달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작품을 구상할 때는 설렙니다. 글이 쌓여 가면 뿌듯하고요. ‘너의 글은 개선되고 또 완성돼 가고 있다’는 친구의 격려도 힘이 됐습니다. 글을 써서 빠듯하게 살 정도는 벌고 있습니다. 불편하진 않아요. 하고 싶은 걸 하려면 포기하는 것도 있어야 하니까요.”
그는 오전과 저녁 시간에 총 4~5시간 가량 글을 쓴다.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술, 담배는 하지 않는다.
“오래오래 쓰고 싶어서 건강을 더 챙기게 됐어요.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 허구를 통해 진짜 삶과 세상을 보여주는 게 소설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어도 마지막 순간까지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얼굴들’(라곰·2025년)은…. 형사 오광심과 베스트셀러 추리소설가 주해환이 유명 인사의 딸 실종 사건을 함께 해결하는 이야기를 그린 이동원 작가(48)의 장편 스릴러다.
광심은 어릴 적부터 자신의 피에 살인 본능이 흐르고 있음을 인지한다. 남자 아이 여섯 명을 살해한 한바로에게 납치된 남동생을 구하고 한바로를 제압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광심을 간파한 아버지는 경찰이 되길 권한다.
해환은 얼굴을 빼고 전신에 화상을 입어 집에서만 지내며 글을 쓴다. 친척인 형사 황옥호가 굵직한 사건들을 해결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건 해환의 추리 덕분이었다. 해당 사건을 모티브로 해환이 쓴 소설이 줄줄이 대박나면서 황옥호는 더 유명해지게 된다.
유명 학자인 고보경은 딸 영혜가 실종되자 옥호에게 비밀리에 사건을 의뢰한다. 대중적 인기가 높은 고보경은 정치권에서 영입 제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옥호를 통해 광심은 해환과 만나게 한다. 영혜의 발자취를 추적하던 광심은 영혜가 주변 사람들과 얽히며 벌어진 사건들을 확인하게 된다.
한바로의 사형이 집행되는 첫 장면부터 광심과 해환이 사건들을 마주하며 그럴 듯한 가면을 쓴 채 타인을 파괴하는 여러 인물들의 맨 얼굴이 드러난다.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되는 가운데 본능을 억누르려 애쓰는 광심의 내면을 비춘다. 내면에 깃든 악이 어떻게 발현되고 또 어떻게 통제되는지 보여주며 인간 존재를 들여다본다.
재개발로 인한 갈등과 비극을 통해 돈 앞에서 인간이 변하고 무너지는 모습도 촘촘하게 그렸다.
첫 장을 펴면 단숨에 내달리게 된다. 3부작으로 기획해 쓴 첫 책으로, 다음 이야기를 예고하며 마무리된다. 후속작도 궁금해진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