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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속에 있었던 건 엄마(나)였구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상자 속의 양’
아이를 잃은 부부가 아이와 똑 닮은 모습과 기억의 정보를 가진 휴머노이드를 입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영화 ‘상자 속의 양’은 그 설정만으로는 어딘가 진부해 보인다. 처음에 낯설어하던 부부는 휴머노이드에게 점점 빠져들 것이고, 그러다 자신들의 진짜 아이와 헷갈리기도 하겠지만, 결국 다른 존재임을 확인하게 될 것이라는 건 우리는 이미 예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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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자 속의 양은 바로 휴머노이드를 은유한다. 어찌 보면 빈 깡통 같은 로봇이지만, 그것을 아들로 여기는 건 엄마의 욕망 때문이다. 죽은 아들을 다시 보고 싶고, 못 해준 죄책감을 그 로봇을 통해 풀어내고 싶은 욕망. 그래서 끝내 이 로봇이 자신의 아들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엄마는 그 휴머노이드에게 말한다. “상자 속에 있었던 건 엄마였구나.”
이 깨달음 뒤에 부부는 인간의 욕망에 의해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로봇들을 보면서 공존을 생각한다. 숲에 있던 나무는 인간의 손길에 의해 잘 다듬어지고, 유리 같은 이질적인 것들과 섞여 가족이 함께 지낼 수 있는 집을 만들어 낸다. AI도 인간과 그런 공존을 할 수 있을까. AI 시대에 과연 우리는 이 AI라는 빈 상자를 보며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가. 우리들의 욕망인가, 아니면 저들과의 공존인가.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