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북한군 후방에서 유격전을 벌였던 미군 제8240부대. 이 부대는 한국인으로 구성됐다. 국가보훈부 제공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는 전쟁 발발 제76주년을 맞아 학술 세미나 ‘6·25전쟁기 무명의 영웅들’를 17일 개최했다. 이동욱 연구원은 세미나에서 “한국 해군이 치안대를 무장세력으로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미 제8군의 유격전도 현장에서 공동 지휘하며 유격전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원은 발표문 ‘6·25전쟁기 미 제8군 한국인 유격대의 창설 배경’에서 특히 미군 제8240부대에 주목했다. 한국인으로 구성된 이 부대는 흔히 ‘켈로 부대’로 불리는 ‘KLO(Korea Liaison Office) 첩보부대’와 수복지역 내 여러 반공 치안대를 흡수해 1951년 7월 창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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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2월 2일부로 해군의용대로 개편됐고, 대원 150명이 상륙해 옹진군 흥미면 일대를 확보하고 적 여단장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 연구원은 “해군의용대는 여러 차례 상륙작전을 통해 전투 능력을 갖춘 무장세력으로 발전했음을 입증해, 미 제8군의 한국인 유격대 창설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세미나 토론자로 나선 김인승 공군사관학교 교수는 “당시 서해를 관할하던 영연방 해군은 피난민 구호에 큰 관심이 없었고, 혹한으로 구조 여건도 매우 열악했다”며 “한국 해군 함정의 적극적인 구출 작전으로 대다수 반공주의 무장 조직이 최소한의 피해로 인적 기반을 보존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중공군의 대공세로 후방 작전의 필요성이 부각되자, 미군은 1951년 2월 백령도에 유격군 사령부인 윌리엄 에이블 기지(William Able Base)를 설치했다. 한국 해군이 훈련한 치안대원을 유격대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이 연구원에 따르면 기지는 미군과 해군 백령도 주둔부대가 연합해 운영했고, 최초의 유격대인 동키 제1부대 역시 우리 해군의 주선으로 창설됐다.
서해 도서에 산재한 치안대는 속속 미 제8군의 한국인 유격대로 재편됐고, 약 한 달 만에 1만2000명 규모로 성장했다. 유격대는 군번도, 계급도 없이 북한 후방에서 포로 획득, 보급로 파괴 등 4000여 회의 작전을 수행했다. 정전협정 체결 뒤 국방부 제8250부대로 재편돼 육군에 편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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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