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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론/이현출]‘언터처블’ 선관위, 신뢰받는 선거 전문조직으로 거듭나려면

입력 | 2026-06-19 23:12:00

채용비리-선거관리 부실 논란에 국민 신뢰 추락
선관위 개혁, 국민적 의혹 완전 해소가 출발점
선거관리 독립성 유지, 책임성-투명성 높여야
감시-감사체계 보완해 외부 통제장치 강화해야



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교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한국 민주주의의 자랑 가운데 하나였다. 과거 3·15 부정선거에 대한 반성으로 선관위는 1963년 내무부 소속에서 벗어나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출범했다. 출범 이후 선거를 정부로부터 분리해 독립적으로 관리하는 제도를 정착시켰고, 이는 권위주의 시기에도 선거의 최소한의 공정성을 지켜내는 안전장치 역할을 했다. 세계적으로도 선거 관리를 헌법기관에 맡긴 사례는 드물다. 한국은 매우 독특한 모델을 채택해 왔고, 이는 오랫동안 민주주의 발전의 성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최근 선관위를 둘러싼 논란은 그 존재 이유를 다시 묻게 만들고 있다. 채용 비리 의혹, 조직 운영의 폐쇄성, 감사원 감사 거부 논란에 이어 최근 지방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부실선거 논란을 낳으며 선관위의 관리 역량과 책임성에 대한 국민적 의문을 증폭시켰다. 독립성의 상징이었던 기관이 오히려 견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비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문제는 단순한 조직 운영의 실패가 아니라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신뢰 위에서 작동한다. 많은 정치학 연구는 선거관리기관, 사법부, 감사기관과 같은 공적 기관에 대한 신뢰가 민주주의 만족도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임을 보여준다. 최근 한국 사회는 주요 기관 전반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는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선관위에 대한 신뢰 상실은 단순한 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정당성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선관위에 대한 불신이 단순히 특정 기관에 대한 불만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며, 선거 결과에 대한 신뢰는 민주주의 체제의 정당성을 지탱하는 핵심 자산이다. 최근 세계 여러 나라에서 확인되듯, 선거관리기관에 대한 불신은 선거 결과 불복, 음모론 확산, 정치적 양극화 심화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도 선거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논란이 반복되면서 선거 과정뿐 아니라 선거 결과 자체에 대한 신뢰마저 흔들리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선관위 개혁은 조직 개편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신뢰를 복원하는 과제라는 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선관위 개혁의 핵심 목표는 권한 축소나 조직 해체가 아니라 국민적 의혹의 완전한 해소를 통한 신뢰 회복이어야 한다.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재설계돼야 한다.

현재 국회에는 선관위원 구성 방식 개편, 감사원 감사 허용, 외부 통제장치 강화, 사무처 조직 개편 등 다양한 법안이 제출되고 있다. 각각의 논의는 의미가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개혁 과제는 독립성과 책임성의 균형을 제도화하는 데 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선관위에 대한 실질적 감시와 감사 체계의 구축이다. 선거 관리의 독립성은 존중돼야 하지만, 인사·예산·회계·조직 운영까지 완전한 성역이 돼서는 안 된다. 선거 집행 과정은 독립적으로 운영하되, 사무 행정과 예산 집행에 대해서는 외부 감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감사원의 정기 감사 또는 국회 산하 독립 감사기구의 설치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둘째, 시민사회에 의한 감시와 평가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독립기관은 정부가 아니라 시민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선관위 운영에 대한 정기적인 평가보고서 공개, 시민참여형 자문기구 확대, 정보공개 강화 등을 통해 국민이 선관위를 감시하고 평가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개혁의 순서도 중요하다. 우선 현재 드러난 선거 관리 부실 사태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수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명확히 규명해야 한다. 부정선거 의혹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국민적 의혹이 있는 곳은 모두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한다. 그다음 입법을 통해 감사 및 통제 장치를 보완하고 조직 운영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이후 선관위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논의는 개헌 과정에서 차분히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당장의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헌법기관의 지위를 흔드는 접근은 오히려 민주주의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독립성은 민주주의의 필수조건이다. 그러나 독립성만으로 신뢰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신뢰는 책임성과 투명성을 통해 얻어진다. 선관위가 진정한 선거 전문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독립성을 지키면서도 국민의 감시와 평가를 겸허히 수용하는 기관으로 변화해야 한다. 선거에서 패배한 사람도 결과를 수용할 수 있을 때 민주주의는 작동한다. 결국 선관위 개혁의 목표는 조직 개편이 아니라 선거 결과를 믿을 수 있는 민주주의의 신뢰 기반을 복원하는 데 있어야 한다.


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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