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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살 넘으면 노처녀, 결혼 못한다”…해외파견 北여성들 불만 고조[주성하의 ‘北토크’]

입력 | 2026-06-20 14:00:00


분단의 장벽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반세기 동안 북한을 지켜봐온 주성하 기자의 시선으로 풀어봅니다.

2013년 12월 북한 개성공단에 있는 한국 기업 의류공장에서 북한 여성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러시아로 가면 300달러를 일시금으로 드립니다.”

요즘 북한 여성들 사이에 러시아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 과거엔 북한 여성들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가 중국이었지만 이젠 러시아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북한 소식통은 “요즘 어딜 가나 러시아 근로자로 파견되기 위해 신체검사를 받는 여성들이 떼를 지어 다니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러시아 파견 여성은 40세 이하에서 뽑습니다.

이들을 모집하는 곳은 여러 무역회사입니다. 이 회사들은 선발돼 러시아로 파견되는 여성에게 300달러를 선불로 줍니다. 300달러면 북한 4인 가족이 1년을 먹고살 수 있는 옥수수나 밀 같은 잡곡을 살 수 있습니다.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고 호르무즈 해협이 막힌 지난 3개월 동안 북한 내부 식량 가격은 2배 이상 급상승했습니다. 곳곳에서 아사자가 나온다는 비명이 들리는 가운데, 여성들의 러시아 진출은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북한 여성 근로자들이 지난해 4월 보라색 유니폼을 입고 러시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와일드베리스’ 모스크바 창고에서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다. 텔레그램 캡처



● 러시아로 몰려가는 노동자들
최근 몇 년 동안 러시아에는 이미 많은 북한 여성이 진출했습니다. 지난해 4월 러시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와일드베리스의 모스크바 창고에서 북한 여성 근로자 수백 명이 일하고 있는 사진이 공개됐습니다. 와일드베리스는 당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시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프로젝트 성과에 따라 확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북한 여성 근로자들이 목격된 곳은 모스크바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러시아 곳곳의 봉제 공장, 농장, 물류센터 등에서 일하는 북한 여성 근로자들이 포착됐습니다.

대표적으로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양돈장에선 돼지를 키우는 북한 여성 근로자 11명이 목격됐고, 인근 우수리스크에서도 북한 여성 15명이 양돈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양돈장은 러시아 근로자보다 10~15% 정도 저렴한 월급을 주고 북한 여성들을 고용했는습니다. 이들은 양돈장 내에서 먹고 살며 돼지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9월엔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재 인력 공급회사가 “봉제 산업, 농업 단지, 마감 및 도장 작업 분야에서 주당 최다 2000명의 북한 여성 노동자를 공급할 수 있다”는 공고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규모면 1년에 10만 명 이상의 북한 여성 근로자를 파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물류센터나 양돈장에 공급된 인력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습니다. 미국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 비욘드패럴렐은 올해 3월에 최신 위성사진 분석을 토대로 러시아 타타르스탄공화국 옐라부가 경제 특구 드론 생산 공장에 1만2000명 규모의 북한 인력이 투입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습니다. 이미 공장에는 최다 4만 명의 노동자를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 시설도 건설됐습니다.

위의 보도들을 종합하면 이미 러시아엔 북한 여성 근로자 수만 명이 있다고 추정할 수 있는데, 어쩌면 와일드베리스의 주장대로 시범 프로젝트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 북한 내부의 러시아 파견 여성 근로자 모집 바람은 지난해에 비해 훨씬 더 거세졌습니다. 신체검사를 받으러 몰려다니는 여성들, 전례 없이 선급 300달러까지 주는 장면은 엄청난 수의 예비 파견 집단이 모집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물론 여성만 모집하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은 올해 제대군인 모두를 러시아에 인력으로 파견한다는 지침을 하달했는데, 그래도 인력이 모자랐는지 군복무 기간이 2~3년 남은 군인들까지 조기 제대시켜 러시아로 파견하고 있습니다. 남성 여성 할 것 없이 빡빡 긁어 보내는 것입니다. 이런 속도와 분위기라면 올해에만 러시아 파견 인력이 10만 명은 훌쩍 넘을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김정순 북한 노동당 근로단체부장(가운데 살구색 바지 정장)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 여성 일꾼 대표단이 지난해 7월 러시아를 방문해 모스크바 페호르스키 섬유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러시아여성동맹 제공



● 탈북 없는 여성 근로자
북한의 해외 인력 공급은 2017년 12월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를 위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임에도 이 결의안에 구속받지 않게 된지 오래 됐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100만 명 이상의 젊은이가 노동시장에서 사라진 까닭에 이들의 빈자리를 메울 노동력 보충이 절실합니다.

해외에서 노동력을 수입한다면 북한 근로자들이 가장 훌륭한 대안입니다. 이들은 철저한 규율 생활을 하기 때문에 태업이 없고, 24시간 교대로 일을 시켜도 불만이 없습니다. 노동력의 대가도 저렴하고, 작업 숙련도 역시 뛰어납니다.

북한 당국에도 남성보단 여성을 해외로 보내는 것을 더 선호할 만한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과거 북한은 벌목공이란 명목으로 수만 명의 남성 근로자를 러시아에 파견했습니다. 그런데 남성은 작업장 이탈에 따른 처벌 위험을 감수하고 러시아 전역으로 흩어져 돈을 버는 데 급급했습니다. 한마디로 통제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성은 다릅니다.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가 채택되기 이전에 북한은 중국에 10만 명 이상의 여성 근로자를 파견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작업장 이탈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러시아 파견 근로자 중엔 탈북해서 한국으로 온 남성은 많지만, 러시아와 중국에서 근로자로 일하다가 한국으로 온 여성은 거의 없습니다. 한마디로 남성보단 여성을 관리하기가 훨씬 쉬운 것입니다.

여성이 왜 탈북을 하지 않는지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올 수 있습니다. 모성애 때문에 가족에 대한 애착이 훨씬 더 강해서일 수도 있고, 처벌을 감내하려는 용기가 부족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북한 당국으로선 남성보단 관리가 편하고 도망치지 않는 여성을 해외로 파견하는 것이 더 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2015년 중국 지린성 훈춘의 한 피복공장에서 일하는 북한 여성 근로자들이 점심식사 후 줄 지어 작업장으로 돌아가고 있다. 동아일보 DB



● 해외 여성 파견의 리스크
하지만 여성이라고 관리 부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오랫동안 집을 떠나 일하기를 어려워합니다.

2년 전 중국 지린성 일대 의류 및 수산물 가공업체에서 일어났던 북한 여성 근로자 소요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당시 여성 근로자들은 북한에서 파견된 관리자와 보위부 간부들을 인질로 잡고 밀린 임금 지급을 요구했습니다. 이 과정에 관리자가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소요 사태의 직접적 원인은 임금을 떼먹은 것이지만, 그전까지 쌓인 불만의 근원은 6년 동안 귀국시켜 주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20대 여성들은 3년 정도 돈을 벌어 결혼 자금을 마련해 귀국하려 했는데 30세가 넘게 됐습니다. 북한에선 30세 넘은 여성은 노처녀 중의 노처녀로 간주돼 결혼이 어렵습니다. 해외로 온 보람이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아이를 두고 온 여성들은 또 그들대로 고향에 있는 가족들, 특히 자녀들 소식을 알 수 없어 분노했습니다. 여성들의 집단 저항을 처음 겪은 북한 당국도 당황했는지 소요 사태에 참여한 근로자들을 다독이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런 교훈 때문인지 최근 북한은 해외에 파견된 여성 근로자들 처우를 높여 주고, 임금을 떼먹지 말라는 내부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한편으로 3년이 지나 어느 정도 돈을 번 여성들은 불만이 쌓이기 전에 신속하게 귀국시키는 대책도 세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성을 포함한 북한 근로자의 러시아 대량 진출은 김정은 체제의 통치 자금을 채워준다는 측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일만은 아닙니다.

가만히 앉아 굶어 죽기보단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는 것이 인간에겐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또 해외 문물을 접하면 ‘우물 안 개구리’ 시각에서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 외국을 체험한 북한 주민이 늘어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북한 체제 변화를 만드는 힘이 축적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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