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전 카보베르데, 스페인과 0-0 월드컵 꿈꾸며 은퇴 미룬 GK 보지냐 세이브 7개 활약… 무승부 이끌어 FIFA 랭킹 65계단 차이 무색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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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었다. 라민 야말 등이 포진한 스페인은 선수단 몸값 총액이 12억2000만 유로(약 2조1350억 원)에 이르는 ‘스타 군단’이다. 스페인은 2024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챔피언으로 이번 대회서도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다. 반면 유럽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는 카보베르데는 이날 경기가 월드컵 데뷔전이었다. 선수단 몸값 총액도 약 950억 원에 불과하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스페인은 2위, 카보베르데는 67위였다. 스포츠 통계 전문 업체 ‘옵타’가 경기 전 예측한 스페인의 승리 확률은 87.2%였다.
하지만 인구 52만 명의 섬나라에서 온 수문장 보지냐의 ‘선방쇼’에 스페인의 공격은 번번이 막혔다. 무려 27개의 슈팅을 시도했지만 보지냐의 방어를 끝내 뚫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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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직후 스페인 선수들은 고개를 숙였지만, 보지냐를 비롯한 카보베르데 선수들은 경기장을 돌며 기쁨의 세리머니를 했다. 경기장은 팬들이 카보베르데 선수들을 향해 내지르는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경기장 밖에선 카보베르데 국기를 두른 팬들이 전통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보지냐는 월드컵 데뷔전을 무실점으로 마친 최고령 골키퍼(40세 12일)가 됐다. 이날 그는 전반 39분 스페인 공격수 미켈 오야르사발의 헤더를 몸을 날려 골대 위로 쳐내는 등 7개의 세이브를 기록했다. FIFA는 보지냐를 경기 최우수선수로 선정했다. 경기 전 5만여 명이었던 보지냐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경기 후 단숨에 600만 명을 넘겼다.
보지냐는 2012년 카보베르데 대표팀에 처음 발탁된 뒤 네 번이나 아프리카네이션스컵에 참가한 베테랑이다. 한때 은퇴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월드컵 출전을 꿈꾸며 장갑을 다시 꼈다. 보지냐는 “대표팀 동료들이 내게 남아달라고 했다. 그들의 격려로 꿈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보지냐의 본명은 조지마르 디아스다. 2011년 프로팀에 입단하면서 포르투갈어로 ‘할머니’를 뜻하는 보지냐를 등록명으로 정했다. 500여 년간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를 받다 1975년 독립한 카보베르데는 포르투갈어를 사용한다. 보지냐는 맞벌이로 바쁜 부모를 대신해 조부모 손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승부욕이 강했던 그는 경기에서 패하면 얼굴이 벌겋게 된 상태로 집으로 돌아갈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이 “할머니에게 이를 거냐”라고 놀리면서 보지냐라는 별명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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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 출전국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늘어난 이번 대회에선 월드컵에 처음 나선 나라들의 ‘여름 동화’가 연일 팬들에게 감동을 안기고 있다. 하루 전인 15일에는 남아메리카 대륙 북쪽 인구 15만 명의 작은 섬나라 퀴라소가 E조 1차전에서 ‘전차 군단’ 독일에 1-7로 패했다. 하지만 퀴라소 팬들은 승패에 상관없이 역사적인 첫 월드컵 무대를 만끽했다. 팬들은 경기 후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선수들에게 기립박수를 보내고 응원가를 불렀다. 감동의 눈물을 보인 딕 아드보카트 퀴라소 감독은 “(대패가) 전혀 부끄럽지 않다. 남은 경기도 아름답게 치르겠다”고 말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